[판결 인사이드] ‘예쁜 여자’ 찍은 몰카는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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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찍은 ‘몰카’라도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신체 부위가 아니라면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잇따라 나왔다.

“수치심 유발 신체부위 아니라면…”
법원 “처벌 할 수 없다” 잇단 판결
검찰 “일반 상식과 동떨어져” 반발

 20대 회사원 A씨(29)는 2013년 말부터 약 5개월간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스타킹·레깅스·스키니진을 입고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는 여성의 하반신과 허리 부위를 49차례 스마트폰으로 몰래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로 기소됐다.

그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여성 B씨의 상반신을 몰래 찍다가 B씨에게 들켜 수사를 받게 됐다. 1심은 A씨에게 전부 무죄를, 2심은 엘리베이터 사건만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최근 A씨에 대해 전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촬영한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에 해당하는지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의 정도, 촬영 장소·각도·거리, 특정 신체 부위의 부각 여부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B씨의 경우 얼굴을 제외한 상반신 전체가 찍혔고 특별히 가슴 부위가 강조되지 않았다.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A씨가 찍은 다른 사진들도 “동의 없이 촬영했지만 일반인의 출입과 통행이 자유로운 장소에서 촬영한 것”이라면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 아니라고 봤다.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박재경 판사도 최근 지하철·버스에서 휴대전화로 여성을 몰래 찍은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C씨(55)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C씨는 지난해 7~9월 짧은 치마와 바지를 입고 앉아 있는 여성들을 12차례에 걸쳐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 판사는 “여성의 노출 정도나 촬영 각도·거리 등을 볼 때 다수의 여성 중 누가 피해자인지 알기 어렵다. C씨의 촬영 의도도 특정한 신체 부위라기보다 ‘예쁜 여자’를 촬영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몰카 촬영 처벌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 유발’에 대한 해석 때문에 일반 상식과는 동떨어진 판결이 나온다”고 말했다.

성폭력 전담 국선변호인인 김종웅 변호사는 “재판에서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꼈는지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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