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비행기 바꿔탔다가 "2500만원 물어내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탑승권을 바꿔 비행기를 탄 승객들에게 법원이 회항의 책임이 있다며 항공사에 수천만원을 물어주라고 결정했다.

서울남부지법 1조정센터(상임조정위원 윤병각)는 아시아나항공이 승객 박모(30)씨, 김모(30)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두 사람이 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고 24일 밝혔다.

지난해 3월 16일 오후 2시 15분(한국시간)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OZ722편이 이륙 1시간 만에 갑자기 홍콩으로 긴급 회항했다. 이 비행기의 항공권을 예약한 박씨가 아닌 김씨가 탄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발단은 이랬다. 친구 사이인 김씨와 박씨는 앞서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탑승권 발급과 출국수속을 정상적으로 마쳤다.

박씨는 아시아나항공을, 김씨는 40분 늦게 출발하는 제주항공 탑승권을 발급받았다. 그런데 탑승구 앞에서 둘은 탑승권을 서로 교환했다. 다음날 출근시간이 늦어질 것을 우려한 김씨가 박씨에게 항공권을 바꿔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평소 비행기를 탄 일이 거의 없는 두사람은 버스, 기차표처럼 항공권을 바꿔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바꿔든 탑승권을 들고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에 탑승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탑승구에서 탑승권과 김씨의 신원 일치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김씨를 태워 출발했다.

하지만 뒤이어 친구 박씨가 제주항공에 탑승하는 과정에서 ‘바꿔치기 탑승’이 밝혀졌다. 뒤늦게 연락을 받은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는 이륙 1시간 만에 홍콩으로 회항했다.

아시아나 항공 측은 “긴급 회항은 당시 김씨의 신원이나 박씨와의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테러나 돌발사고 등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며 “바꿔 부친 짐 역시 폭발물 등 위험한 물건일 우려가 있어 회항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결국 이 비행기는 운항에 4시간 가량이나 차질을 빚었다. 다른 승객 258명도 개인 일정을 조정하는 등 불편이 잇따랐다.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회항 때문에 다른 승객들에게 지급한 숙박비와 추가 유류비 등을 6190만원을 지급하라며 박씨와 김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두 사람은 “비행기를 바꿔 탄 것은 잘못이지만 항공사가 신분 확인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항변했다.

결국 법원은 2500만원을 나눠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이번 강제조정 결정은 양측이 결정문을 송달받은 뒤 2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긴다. 이의가 제기되면 다시 재판이 진행된다.

피고 측 소송대리인인 로엘법률사무소 이원화 변호사는 “젊은 나이의 피고인들에겐 2500만원은 적지 않은 액수이고 신원확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의 제기 여부를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조정안을 검토한 뒤 이의 제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은 앞서 두 사람을 업무방해 혐의로도 고소했지만 수원지검은 지난해 10월 “항공사가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업무방해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