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탐사추적] 정치자금 잔액 6억서 2000원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정보통신부 차관을 지낸 열린우리당 변재일 의원의 후원회는 2004년 2억7600만원을 거뒀다.

변 의원이 지난해 정치자금으로 쓴 돈은 4400만원. 지난해 말 현재 2억3200만원이 남아 있었다.

여기에 변 의원이 지난해 신고한 재산은 13억6000만원. 2003년보다 5700만원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재산도 늘고 후원금도 2억원 이상 걷은 데다 통장에 잔액이 많아 변 의원은 자금 사정이 여유있는 의원으로 꼽힌다.

본지는 17대 의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지난해 후원금 및 정치자금 회계 내역과 재산 증감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의원 전원의 자금 사정을 살펴봤다. 의원들이 통장에 얼마를 보유하고 있는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5000만원 이상 쥐고 있는 의원은 96명=1억원 이상을 비축해 놓은 34명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이 19명 포함돼 있다.

열린우리당은 10명, 민주당 3명, 자민련.무소속이 각 1명.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은 6억3803만원을 남겨 정치자금 잔액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한나라당 김기춘(3억5485만원)▶민주당 이낙연(2억4005만원)▶열린우리당 변재일(2억3200만원)▶한나라당 이방호(2억3049만원)▶한나라당 임태희(2억529만원) 의원 순이다.

잔액이 1억원 이상인 34명 가운데 재산이 10억원 이상인 사람은 19명. 정치자금도 비교적 넉넉하고 재산까지 많은 그룹이다.

열린우리당에선 문희상 의장.염동연 상임중앙위원 등 당 지도부와 재계.관계 등에서 영입한 초선 의원이 일부 포함돼 있다. 한나라당에선 김무성 사무총장 등 재선 이상 의원이 대부분이다. 상대적으로 자금 압박이 덜한 이 그룹에선 정치자금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여유있는 답변이 나왔다.

변재일 의원의 경우 본지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모은 정치자금이 부족하지 않았다" "정치자금 모금 한도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기춘 의원은 "국회의원이 제도에 적응해 나가야지, 제도를 국회의원 씀씀이에 맞출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잔액이 1억원에는 못 미쳤으나 50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인 의원은 62명, 30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은 53명이었다.

결과적으로 의원 96명이 5000만원 이상 목돈을 쥐고 있었고, 절반 정도(149명)는 3000만원 이상을 정치자금으로 비축하고 있었다.

◆ 의원 절반 가까이 잔액 바닥=통장 잔액이 3000만원 미만인 의원은 136명으로 집계됐다. 여야 모두 초선 의원들이 많았다.

잔액이 1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 의원 42명 가운데는 민주당 김종인 의원처럼 재산(44억2000만원)이 수십억원대에 달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선병렬 의원 등 10명은 통장 잔액이 바닥인 데다 개인 재산도 1억원에 못 미쳤다.

잔액이 1000만~3000만원인 의원들은 "올해 초 지출한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거의 정치자금을 소진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털어놨다.

1902만원을 남긴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올 초 지역구 사무실 직원 월급 등으로 남은 돈을 다 써버려 잔액이 바닥"이라고 했다. 이들은 대부분 본지의 여론조사에서 "정치자금이 부족해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은 "작년에 후원금이 3000만원도 안 들어와 지역구에서 토론회도 한번 못 열었다"며 "돈 문제는 아예 신경을 끄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당 선병렬 의원은 "후원금 수입이 부족해 작년엔 의정보고서도 못 찍었다"며 "올해는 지역구에 의정보고서 한번 보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소연했다.

◆ "올해는 더 힘들 것"=수억원을 남겨 놓은 의원이 있는가 하면 통장에 2000원밖에 남지 않은 의원이 있는 등 의원별로 편차가 극심해진 것은 빡빡해진 모금제도 때문이다. 법인.단체의 기부가 금지되고 고액 기부자 명단이 공개되면서 '힘 있는' 여당 의원이나 재선 이상의 지명도 있는 의원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돈을 모으고 있으나, 나머지는 바뀐 제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17대 의원의 정치자금 평균 잔액이 4900만원대로 나타난 것은 전반적으로는 자금 사정이 최악의 상태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다수 의원은 올해 자금사정이 지난해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총선이 있어 정치에 대한 관심이 컸지만 올해는 별다른 '정치 이벤트'가 없기 때문이다. 통장 잔액이 많은 의원 가운데는"올해 정치자금을 얼마 거둘지 몰라 긴축해 둔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

◆ 탐사기획팀 = 정선구 (차장).강민석.김성탁.정효식.민동기.임미진 기자.신창운 여론조사전문위원

◆ 제보 =

02-751-5644, 5674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