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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평화적 이용 위해 지혜 모을 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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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6 면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에너지 산업을 이끌어 온 고리원전. [중앙포토]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인다. 조금 거리를 두고 봐야 보다 객관적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원자력 문제가 그렇다.


?이달 초까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장 재임 시 맡은 핵심 업무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안전에 관한 것이었다. 원자력과 평화는 빛과 그림자 같은 관계다. 원자력에 대한 공포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국제적 노력으로 이어졌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원자력의 발전을 이끌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전기 생산에 효과적인 원자력 발전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핵무기에 대한 치명적 공포를 경험한 결과다. 국제사회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을 위해 IAEA를 출범시킨 배경이기도 하다.


 필자가 IAEA에 근무하는 동안 가장 역점을 둔 분야도 원자력의 이용 과정에서의 방사선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흔히 원자력이라고 하면 원자폭탄이나 원전 사고 등 치명적인 공포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범위는 폭넓고 일상적이다. 타이어에 방사선을 쪼이면 사용 기간이 늘어나고, 자동차 엔진 내 전기선에 방사선을 조사하면 고열 파열을 방지한다. 대형 구조물의 건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비파괴검사에도 방사선 기술이 널리 이용된다. 최근 의료 분야에서 대중화한 양전자방출컴퓨터단층촬영(PET-CT)도 방사선 이용 기술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원자력·방사선 이용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방사선 과용, 불필요한 노출 방지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안전 문제가 필수다. 방사선의 과용과 불필요한 노출로 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IAEA가 안전 관련 기준을 제정·권고하고 계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도한 공포도, 안전에 대한 방심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원자력발전의 부산물인 방사성폐기물의 안전관리가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방폐물 중에서도 방사능 위험도가 높은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의 관리·처분 문제는 각 나라의 정부나 산업계, 연구기관의 차원을 넘어 인류 공통의 과제다. 원자력 발전 60년을 맞으면서 지구촌에 사용 후 핵연료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IAEA가 사용 후 핵연료 발생국이 스스로 처분을 책임지고, 무엇보다 안전과 자국의 환경을 고려해 미래 세대에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당대에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의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원칙을 천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생산에서 원자력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원자력 의존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당면 현안인 사용 후 핵연료 관리정책 결정은 무엇보다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다. 각 나라의 원전 정책은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결정돼야 하지만,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문제는 원자력발전 정책과 별개로 지금까지 쌓인 원자력발전의 부산물을 처리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의 문제다. 따라서 조속한 관리정책 수립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 실정에 맞는 원전정책 필요입성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했다. 평화 또한 체계를 갖추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말이 아닌 실행으로 지켜져야 한다.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진화해 오면서 ‘불’이라는 에너지를 만났다. 불에서 도망친 종족은 멸망했고, 불을 지혜롭게 이용한 종족은 타 종족을 지배하게 된 것이 인류의 문명사다.


 원자력도 예상되는 위험성 때문에 회피하거나 책임을 미루기보다 기술적으로 정복해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안전하게 관리·운용하는 것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수성의 지혜다.


 사용 후 핵연료는 먼 후대까지 오랜 기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위험물질인 만큼 안전한 관리와 처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실행이 중요하다. 필자는 지난 5년간 세계적인 원자력 전문가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선진국들이 사용 후 핵연료 관리·처분 문제에 관한 사회적 중지를 모으고 책임을 나누는 실천적 지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어려운 일을 함께 나누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지혜를 모아 온 전통이 있다. 이제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우리의 위상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원자력 현안 문제 해결에 충실해야 한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처분은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또 하나의 모범사례가 되었으면 한다.


한필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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