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38언더파 쳤다는 '평양골프장' 가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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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북한 오픈 경기 장면. 캐디들이 빨간 조끼를 입고 있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 제공]

▶ 지난해 제1회 북한 오픈 골프대회 포스터. [미국 골프다이제스트 제공]


*** 북한오픈골프대회는

  • 작년 4월 첫 대회… 올핸 6월에

  • 영국인 등 8명 출전 9홀 승부

  • 43타로 우승 … 북 아마추어 82타

  • '페어웨이는 울퉁불퉁했고 그린은 느렸다. 홀의 깃대는 휘어지는 하얀 플라스틱이었다. 그나마 두 홀에는 깃대조차 없었다. 갑자기 앞서 가던 조가 멈춰섰다. 염소 떼가 페어웨이로 뛰어들어와 플레이가 중단됐다고 했다. 염소몰이가 뒤따라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도 보였다'.

    북한의 유일한 18홀짜리 골프장인 평양골프장에 대한 묘사다. 글을 쓴 사람은 미국의 골프 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의 국제담당 편집장 존 바튼(영국인). 그는 지난해 4월에 열린 제1회 북한 오픈(North Korean Open) 골프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최근 발간된 이 잡지 5월호에 참가기를 썼다. 제목은 '어둠의 심장부에서의 골프(Golfing in the Heart of Darkness)'.

    그 대회의 북한식 표현은 '2004년 평양 골프 원정경기'였다. 북한에서 열린 첫 골프대회로 여덟 명이 출전한 보잘 것 없는 이벤트였다고 한다. 승부도 18개가 아닌 9개 홀 경기 결과로 가렸다. 주최사는 영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 고려투어(중국 베이징 소재). 평양 주재 영국대사 데이비드 슬린과 바튼을 포함한 영국인 5명, 북한인 3명이 참가했다고 한다(바튼은 '미국인에게는 문호가 닫혀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오픈대회는 아니다'고 해석을 달았다).

    바튼은 골프장을 이렇게 소개했다. '파72의 평양 골프코스는 10년 전 북한의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이 생애 첫 라운드에서 다섯 번의 홀인원을 포함해 38언더파 34타를 쳤다고 전해지는 골프장이다. 8차로의 한적한 고속도로를 타고 평양에서 남쪽으로 25㎞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골프장은 거의 텅텅 빈다. 썰렁한 클럽하우스는 전기가 끊겨 어두컴컴했다'.

    바튼은 '소나무.벚나무.복숭아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코스는 환상적이었다. 골프장을 둘러싸고 있는 석천산과 태성호수의 경치도 멋졌다'며 빼어난 경관도 소개했다. '골프는 북한에서'라는 제목의 골프장 안내 책자에는 '18개 홀마다 독특함을 갖고 있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여자 캐디들은 모두 말쑥한 차림새로 예쁘고 예의 발랐다. 평양 골프 코스는 세계 어느 유명 코스에 못지않았고, 그날의 라운드는 멋진 경험이었다'고 글을 맺었다.

    우승은 9홀에서 43타를 친 바튼이 차지했다. 박씨라고 밝힌 북한인 아마추어 골퍼는 82타(46오버파)를 쳤다고 한다. 그 박씨가 요즘엔 완전히 골프 신도가 돼 매주 라운드한다는 소식도 바튼은 덧붙였다. 바튼은 또 평양 주재 외교관들 말을 인용해 '북한 내 골프 인구는 외교관.외국인 사업가를 포함해 50명 이내일 것'이라고 했다. 제2회 북한 오픈은 6월 4~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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