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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말랄라 쐈던 탈레반 소행…“희생자 상당수 여대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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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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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폭탄 테러가 발생한 파키스탄 차르사다의 바차칸 대학에서 부상자를 실은 구급차가 인파를 헤치고 캠퍼스를 빠져나가고 있다. 테러범들은 학생·교직원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폭탄을 터뜨렸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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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랄라

무장괴한들은 치밀한 계획하에 테러를 저질렀다. 피해를 극대화할 수 있는 날을 선택해 이른 아침 짙은 안개 속에 학교로 잠입했다.

진보주의적 성향 바차칸 대학서
파슈툰족 행사 맞춰 10차례 폭발
괴한들, 기숙사·교실 돌며 난사
군경과 3시간 교전 끝 전원 사망
13개 조직 뭉친 파키스탄탈레반
“우리가 공격” “아니다” 두 목소리

 CNN에 따르면 20일 오전 9시30분쯤(현지시간) 파키스탄 북서부 카이베르파크툰크와(PK)주의 주도 페샤와르에서 50㎞ 정도 떨어진 차르사다에 있는 바차칸 대학에 자살폭탄 조끼를 입은 무장괴한 4명이 침투했다.

이들은 기숙사·교실·연구실 등을 마구잡이로 뒤지며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목격자들은 10여 차례 폭발음도 들렸다고 전했다.

괴한의 공격이 시작될 당시 학교에는 3000여 명의 학생과 마침 예정된 행사를 맞아 초청된 600명의 방문객이 있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30명 이상이 사망하고 50명 넘게 다쳤다고 보도했다.

 생존 학생인 나세르(23)는 “괴한들이 남학생과 여학생을 가리지 않고 총을 쐈다. 내가 헤아려본 사체만 56구였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3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며 건물로 뛰어들어 사방에 총을 난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험도 있고 행사도 열리는 날이어서 교내에 학생이 많았다”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괴한들이 AK-47소총을 휘두르며 학생들이 잠들어 있는 기숙사로 들이닥쳤다”는 목격담도 전했다. 외신은 희생자 중 상당수는 여학생들이고 희생자들은 주로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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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차칸 대학은 파슈툰 독립운동을 이끈 정치가 압둘 가파르 칸을 기리기 위해 2012년 설립됐다. 학교 이름 바차칸은 그의 애칭이었다.

인도에선 그가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였고 마하트마 간디와 가까웠다며 그를 ‘변방의 간디(Frontier Gandhi)’라 불렀다. 이날은 그의 28주기를 맞아 학교에서 파슈툰족 문화제와 시 낭송 대회 등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치안당국은 오전 11시45분쯤 대부분의 학생을 대피시켰으며 교내 2개 지역을 봉쇄한 채 괴한과 교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특공대와 헬기까지 동원한 세 시간의 치열한 교전 끝에 괴한 4명은 모두 사망했다.

 테러 직후 극단주의 무장단체 파키스탄탈레반(TTP)은 테러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우마르 만수르 TTP 사령관이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130명을 처형한 정부에 대한 우리의 메시지”라고 밝힌 반면, 무함마드 쿠라사니 TTP 대변인은 “TTP와 최고 지도자 물라 파즈룰라는 바차칸 대학 공격과 무관하며 이를 비난한다”고 밝혔다.

이후 만수르의 주장이 적힌 페이스북 포스팅은 삭제됐다.

 이처럼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해 TTP의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TTP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지지하는 파키스탄 내 13개 군소 무장단체가 뭉쳐 만들어졌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샤리아) 시행을 주장하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활동하는 TTP는 최근 이슬람국가(IS)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2012년엔 여성 교육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15세 소녀인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머리와 목에 총을 쏴 치명상을 입혔다. 말랄라는 영국에서 치료를 받고 여성 교육과 인권운동에 헌신해 2014년 최연소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2014년 12월엔 페샤와르의 군사학교에서 어린이 135명 등 154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를 자행했다. 진보주의적 성향을 가진 바차칸 대학은 TTP의 공격 대상으로 위협을 받아왔다.

다보스포럼 참석을 위해 스위스를 방문 중인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성명을 통해 “무고한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테러리스트의 비겁한 공격은 신념이나 종교와 거리가 멀다”며 “조국을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할 것이며, 이 같은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홍주희·서유진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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