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 ‘왜 총선 패했나’ 8개월 만에 백서 낸 영국 노동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지난해 5월7일 오후 10시 출구조사가 나오는 순간까지 영국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의 승리를 자신있게 예상한 곳은 드물었다. 331석(과반 326석)을 확보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내다본 데는 사실상 없었다.

여론조사 우위 믿고 있다 낭패
패착 원인 연구 의뢰해 열띤 토론
반성 없는 한국 정치와 다른 점

주요 여론조사기관들은 내내 박빙 승부라고 했다. 노동당도 집권한다고 호언하곤 했다. 2015년 총선의 패자들이다.

 이건 우리 정치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이변’말이다. 영국 정치와 우리는 그 이후가 달랐다.

 8개월여 만인 19일 여론조사기관들과 노동당이 당시 패배를 복기(復棋)하는 보고서를 냈다. 여론조사의 경우엔 조사기관들이 모여서 만든 영국여론조사업체협회(BPC)·시장조사학회(MRS)가 연구를 의뢰했다고 한다.

그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표본이 문제였다. 대표성이 부족했다. 보수당 성향의 지지자들이 덜 포함된 반면 목소리는 크되 투표장에 가지 않는 노동당 지지자들은 과다 대표됐다. 조사 후 판별 분석 과정에서도 이런 잘못이 시정되지 않았다.

 연구 책임자인 사우샘프턴대 패트릭 스터지스 교수는 “무작위로 표본을 취하고 해당 표본이 답을 할 때까지 문을 계속 두드리는 통계청 조사와 달라서 그렇다”고 했다.

실제 쉽게 연결되는 이들에서 노동당이 6%포인트 앞선 반면, 3~6차례 전화를 해야하는 이들에선 보수당 지지율이 11%포인트 높았다.

 조사 업체들은 또 자신들의 조사 결과가 타 업체와 크게 차이나지 않도록 하곤 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비슷한 결과들이 지속적으로 쏟아져 나온 이유였다.

또 “보수당으로의 막판 표 결집이 있었다”거나 “여론조사에선 지지 성향을 안 밝히는 ‘수줍은 보수당 지지자들(shy Tory·샤이 토리)’이 있다”는 정치권의 관행적 주장은 사실과 다르거나 그 효과가 미미했다.

 노동당의 총선 백서는 네 가지 참패 원인을 들었는데 유권자들 사이에서 노동당이 과거 경제를 잘못 운용했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했고, 난민 등 이슈에서 노동당이 신뢰를 주지 못했으며 총선 당시 당수였던 에드 밀리밴드에 대해선 총리감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했다.

또 스코틀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과의 연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영국 정가에선 이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우리는 주요 선거 이후엔 대체로 승리담으로만 요란할 뿐이다. 패자들은 설령 패인 분석을 하더라도 덮어두곤 한다.

여론조사 업체들이 함께 곰곰이 잘못을 되짚어 봤다는 얘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우리 정치에서 이변은 늘 이변인 채로 남아있다. 반성해야 나아갈 수 있다.

우린 늘 새출발하는 듯 보이지만 유사한 잘못을 되풀이해왔다. 영국 정치와 우리는 그 지점이 달랐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