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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성 기자의 교육카페] “뛰면 안 돼”보다 “아래층 할머니께 죄송한데… ” 층간소음은 예절교육으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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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저는 복받은 아빠입니다. 두 딸 모두 건강하고 활달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모두 운동도 좋아하고 세 걸음 이상은 항상 뛰어다니죠. 규칙적인 운동은커녕 걷기조차 싫어하는 아빠를 닮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즐거워할 순 없답니다. 아이들이 내는 소음 탓이죠. 제 가족은 20층이 넘는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늦은 저녁 소파나 침대에서 놀던 딸들이 “쿵” 하고 방바닥을 디딜 때마다 제 머리엔 아래층 이웃들의 얼굴이 스쳐갑니다. 한때 위층 소음으로 고생했던 터라 그 고통을 가히 짐작할 수 있거든요.

 겨울은 층간소음 스트레스가 특히 심한 계절입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층간소음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민원 중 약 40%가 동절기인 11~2월에 집중됩니다. 난방을 위해 창문을 닫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고 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도 길기 때문이죠.

 다양한 소음 중 가장 골치 아픈 게 어린이들이 내는 소음입니다. 환경공단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2012~2015년 접수된 사례 중 가장 많은 유형이 아이들이 뛰거나 걷는 소리로 인한 갈등(71.6%)이었습니다. 망치질(4.3%), 가구 끄는 소리(3.1%), TV 등 가전제품 음향(2.8%)에 비해 압도적이죠.

 아무리 신경 써서 아파트를 지어도 층간소음을 완벽하게 해소하긴 어렵다고 합니다. 결국은 부모가 노력해야 하는 일이겠죠. 하지만 말처럼 쉽진 않은 일입니다.

여느 부모처럼 저도 “뛰면 안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두꺼운 매트를 거실과 애들 방 곳곳에 깔기도 했고요. 하지만 호통을 쳐도 그때뿐, 두 딸은 금세 매트 없는 바닥에서 뛰고 있지요.

 아랫집 할아버지께서는 훨씬 지혜로웠답니다. 2년 전 어느 겨울날, 현관문을 여니 두툼한 핑크색 슬리퍼 두 켤레가 놓여 있었습니다.

“실내에서 신었으면 좋겠다”는 그분의 당부 편지도 함께였죠. 뜻밖의 선물을 받은 두 딸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고마운 이웃이 아래층에 살고 있고 무심코 내디딘 발소리가 이웃을 괴롭힐 수 있다는 걸 의식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도 소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실은 선물을 받은 슬리퍼도 “귀찮다”며 잘 신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딸들은 그분을 마주칠 때마다 인사했고, 가끔씩 “뛰어서 죄송하다”는 말도 하더군요. 천진난만한 애들 모습에 아랫집 분들도 한결 너그러워졌습니다.

 지난해부터 환경공단은 어린이집·유치원을 대상으로 ‘층간소음 예절교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놀이를 통해 층간소음을 이해시키는 예방활동입니다.

올해는 공동주택 주민들끼리 글을 주고받는 프로그램도 도입하려 합니다. 엘리베이터에 붙인 종이에 아랫집 이웃은 불편함을 호소하고 윗집 아이는 미안함을 전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조경호 환경공단 생활환경팀장은 “층간소음에 대한 교육과 함께 더불어 사는 이웃과 공동체 예절에 대해 가르쳐야 아이들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자녀들로 인한 층간소음에 스트레스 받는 부모님, 아이들에게 이웃을 소개하고 먼저 인사하는 예절을 가르치는 건 어떨까요.

천인성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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