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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유치원들 “교사 월급 못 줘…대출이라도 받게 해달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전국의 사립 유치원들이 시·도교육청에 “누리과정 비용을 은행 단기 대출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잇따라 요청하고 나섰다.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 미편성으로 보육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유치원들이 일선 교육청의 지원 중단에 대비해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누리과정 지원 끊기면 운영 곤란
각 시·도교육청에 차입 승인 요청
이준식 장관, 오늘 교육감들 만나

 이명희 서울유치원연합회장은 17일 “사립 유치원들이 은행에서 단기 차입을 받아 보육대란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게 해달라고 서울시교육청에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매달 20일께 누리과정 지원금을 일선 유치원들에 지급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는 올해 예산안에서 시교육청이 편성했던 유치원 누리과정 비용을 전액 삭감했다.

 사립 유치원들은 대출을 받아 일단 부족한 예산을 메운 뒤 향후 누리과정 지원금이 들어오면 상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은행 몇 군데와 협의해 보니 은행들은 ‘교육청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이에 따라 교육청에 승인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사립 유치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인건비다. 이 회장은 “공립 유치원은 인건비를 교육청에서 지급받지만 사립 유치원의 경우 학부모가 낸 유치원비에서 인건비를 지급하는 곳이 많다”며 “지원금이 끊기면 임금 체불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의 한 사립 유치원장은 “200명 정도 원아가 있는 유치원은 당장 5000만원 이상 빌려야 인건비·운영비 등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누리과정 지원금은 사립 유치원은 22만원, 방과후학교는 29만원(운영비 포함)이다.

 유치원은 법률상 교육기관으로 분류돼 교육청의 허가 없이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쓸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대출을 승인할 경우 사실상 유치원이 빌리는 원금과 이자 상환에 대해 교육청이 보증하는 방식이 된다”며 “이 때문에 법률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경기도지회와 광주지회 등도 해당 교육청에 은행 차입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들 교육청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법률적인 제약도 있을 뿐 아니라 애초 정부가 줘야 하는 돈을 교육청이 보증을 서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런 가운데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장휘국 광주교육감·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임원들과 상견례를 할 예정이다. 이 부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와 취임사 등을 통해 “교육감들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전격적으로 타협이 성사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누리과정은 교육감 의무사항이고 중앙정부는 필요 예산을 이미 보냈다는 입장엔 변화가 없다”며 “애로사항을 듣고 도울 길을 찾겠지만 ‘깜짝 카드’를 준비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시·도교육청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정부와 국회의 몫”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교육청 입장에선 돈이 없는데 특별한 답이 있을 수 없다”며 “정부가 생산적인 대안을 갖고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김형진(36)씨는 “정부·교육청·지방의회 모두 해결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며 “아이와 학부모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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