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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생각하라” 평범함을 거부…“핵전쟁 불사” 라이벌에겐 몰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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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아이폰 발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9년 전인 2007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모바일 혁명을 촉발시킨 중대 발표를 한다.

[사람 속으로] 세 번째 영화화…사후 5년 여전히 주목받는 잡스

 “우리는 오늘 혁신적인 제품을 무려 세 가지나 선보입니다. 첫 번째는 MP3 플레이어 아이팟의 대화면 버전입니다. 둘째는 혁신적인 휴대전화입니다. 셋째는 획기적인 인터넷 통신기기입니다. 뭔지 감이 오나요? 이것들은 각각의 3개 제품이 아닙니다. 단 하나의 제품입니다. 이 새로운 제품은 이제부터 ‘아이폰(iPhone)’이라고 부릅니다.”

 스티브 잡스의 이런 선언과 함께 출시된 ‘아이폰’이 지난 9일로 아홉 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는 ‘선 없이도 통화가 가능’한 게 장점이던 무선전화를 ‘스마트’한 휴대전화로 진화시켰다. 비록 잡스는 2011년 10월 췌장암으로 사망했지만, 정보기술(IT) 산업 종사자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매력적인 아이콘이다. 지난해 3월 잡스의 학생 시절 모습이 담긴 고교 졸업 앨범이 이베이를 통해 1만2322달러(약 1375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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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배우 애슈턴 커처가 출연한 2013년 작 ‘잡스’에 이어 21일에는 월터 아이작슨의 전기소설을 바탕으로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을 맡은 영화 ‘스티브 잡스’(사진 오른쪽)가 개봉한다. [중앙포토]

 사후 5년이 채 안 됐지만 잡스의 삶을 조망하는 영화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유명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스티브잡스’가 오는 21일 국내에서 개봉한다. 2013년 작 ‘잡스’,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스티브 잡스: 맨 인 더 머신’에 이어 잡스를 주제로 한 세 번째 영화다. 2013년 개봉한 애슈턴 커처 주연의 영화 잡스가 그의 업적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작품은 그의 독단적이고 냉철한 성격까지 화면에 묘사했다고 한다.

 “컴퓨터도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잖아. 그걸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영화 ‘스티브잡스’ 속 그의 대사다. 1982~84년 잡스는 데스크톱 PC ‘매킨토시’를 일체형으로 설계하는 문제를 놓고 부하 직원들과 시시때때로 대립했다. 잡스는 “컴퓨터가 친근한 모습을 갖추려면 모니터와 본체가 한 묶음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디자이너들은 “괴상망측한 디자인”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잡스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의 뜻에 따라 디스크드라이브를 화면 밑에 장착한 매킨토시는 다른 컴퓨터들보다 본체 길이가 더 길고 폭은 좁았다. 특히 컴퓨터 밑부분에 움푹 들어간 곳은 사람의 턱을 떠올리게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잡스는 애플 창업 이후 30여 년간 줄곧 사람의 얼굴을 한 컴퓨터를 만들고자 했다. 애플의 인체공학적 디자인은 잡스의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라고 보도했다.

 “기업은 자선가가 아니야. 극도의 가치를 지닌 상품만으로 평가받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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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84년 작 ‘매킨토시’와 98년 작 ‘아이맥(사진 오른쪽)’.

 잡스는 오로지 기업가 본연의 업적으로만 평가를 받으려 했다. 그래서 다른 곳에는 눈을 거의 돌리지 않았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등 성공한 기업가들이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행하는 기부에도 매우 인색했다. 생전에 벌어놓은 재산 83억 달러(약 10조원) 가운데 공식적으로 단 1달러도 기부하지 않았을 정도다.

85년 ‘플레이보이’와 인터뷰에서 그는 “자선은 잘 하려면 전업으로 해야 한다”며 “대부분의 자선활동은 평가 시스템이 없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적지 않은 이들에게 반감도 불러일으킨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센터장은 “잡스는 타인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에너지를 기업 활동에만 집중하는 게 세상을 혁신하는 가장 효율적 판단이라 생각했다”며 “그의 슬로건인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도 결국 평범한 생각, 주류의 생각을 거부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잡스는 라이벌에게도 몰인정했다. 2011년 발간된 잡스 전기에는 그가 구글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상대로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말한 구절이 나온다. “구글 XX들(you fxxking), 아이폰을 도둑질했어. 내 숨이 다할 때까지 애플이 가진 은행 잔고 마지막 1페니까지 털어 이기겠다.” 실제로 그는 구글은 물론 삼성전자와도 끈질긴 소송전을 벌였다.

그를 상징하는 독특한 요소는 더 있다. 연봉 1달러, 불교 신자, 채식주의자, 터틀넥에 청바지 패션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 샤오미 CEO 레이쥔(雷軍)은 잡스를 따라 할 목적으로 검은색 상의에 청바지·운동화 차림으로 “원 모어 싱”까지 외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이뤘지만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강한 고집과 몰인정한 태도를 지닌 잡스. 혹자는 업적보다는 그의 부정적인 면을 더 강조하며 그를 폄하한다. 하지만 여전히 잡스는 첨단의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왜 그럴까.

 이창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히피와 불교, 첨단 반도체 테크놀로지라는 세 가지 조류가 핵융합을 일으킨 곳이 실리콘밸리였고 그 중심에서 가장 돋보인 활약을 펼친 이가 바로 잡스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잡스와 동일어처럼 불리던 애플이 앞으로도 최정상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위원은 “IT산업은 업황 고저가 심한 까닭에 MS·야후·노키아 등 어떤 기업도 1등 자리를 10년 이상 차지하지 못해 왔다”면서 “팀 쿡이 내놓은 ‘애플워치’의 부진을 보더라도 애플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한 가지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S Box] 잡스 “윈도, 우리 기술 도둑질” 빌 게이츠 “당신도 제록스 베껴” … 공생하다 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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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왼쪽)와 게이츠가 2007년 5월 한 콘퍼런스에서 컴퓨터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때로는 친구였고, 때로는 경쟁자였던 애증의 관계다. 1955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75년과 76년에 각각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했다.

사업 초기 두 사람은 공생 관계였다. 잡스는 80년대 초반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게이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드웨어에 걸맞은 운영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서였다. 게이츠는 애플 컴퓨터에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엑셀’의 전신)을 독점 공급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두 사람은 갈라섰다. 게이츠가 85년 MS의 운영체제(OS) ‘윈도’를 개발하면서 1년 전 애플이 내놓은 매킨토시의 그래픽 사용자환경(GUI)을 그대로 본떠 왔기 때문이다.

잡스는 “당신을 믿었는데 도리어 우리 기술을 도둑질했다”며 분개했다. 게이츠는 이에 위축하지 않고 차분하게 반응했다. “스티브, 당신도 제록스에서 GUI를 베껴 왔잖아. 나는 당신이 제록스 기술을 훔쳤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야.”

윈도 출시 이후 MS는 80년대 후반부터 약 15년간 전성기를 구가했다. 윈도95의 출시는 그 정점이었다. 반면 매킨토시의 판매 부진 탓에 잡스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MS가 반독점 소송에 시달린 2000년 중반부터는 아이팟과 아이폰을 내세워 ‘모바일 생태계 구축’에 성공한 잡스가 다소 우세했다.

2011년 잡스가 세상을 떠나며 두 사람의 30년 경쟁은 막을 내렸다. 단 한 명뿐인 라이벌을 떠나보내며 게이츠는 “그와 함께했던 세월은 미치도록 훌륭하고 명예스러운 일이었다. 동료이자 경쟁자 그리고 친구로 삶의 절반 이상을 함께 떠나보냈다”고 애도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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