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처럼 “아이 X발” 무죄…사람 모인 곳서 “개XX” 유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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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화가 나 내뱉은 ‘욕설’도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을까. 형법에 따르면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사람’은 징역 1년 이하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욕설이 모욕에 해당하느냐 아니냐는 상황에 따라 갈린다.

대법 모욕죄 판결 상황 따라 갈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경찰관에게 욕설을 한 혐의(모욕)로 기소된 이모(45)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 2014년 6월 새벽 택시운전기사와 요금문제로 시비가 붙어 112신고를 했다. 경찰관이 신고를 받은 지 20분이 지나 현장에 도착하자 화가 난 이씨는 “아이 X발!”이라고 욕설을 했다. 경찰관은 이씨를 모욕죄로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씨에 대한 재판에서 1·2심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욕설을 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유죄로 판단하고 각각 선고유예,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모욕죄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해당한다”며 “‘X발’이라는 표현이 무례하고 저속하지만, 단순히 발언자의 분노감을 표출하기 위해 흔히 쓰이는 말이고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언사는 아니다”고 판단했다.

 반면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상대방에게 “개XX”라고 욕한 택시운전기사 김모(57)씨에게는 유죄가 인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승객에게 욕설을 한 혐의(모욕)로 기소된 김씨에게 지난해 12월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는 2014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부근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요금을 늦게 준다는 이유로 문 밖에 서 있는 손님에게 “개XX” 등의 욕설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모욕죄의 ‘공연성’은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이고, 이 사건에서 김씨는 다수가 통행하는 지하철역에서 큰 목소리로 욕설을 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단순한 가치판단을 담은 표현은 모욕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A대학 박모(54) 교수가 소속대학 총장을 비판하기 위해 동료교수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총장에 대해 ‘독단적’ ‘음흉한’ ‘비민주적’ 등의 표현을 쓴 것을 무죄로 판단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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