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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바람이 키운 황태, 중국산 제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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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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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소백산 황태 덕장에서 직원들이 산바람을 맞으며 건조 중인 황태를 살피고 있다. 용두리에만 명태 약 150만 마리가 걸려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8일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소백산 황태 덕장.

예천 7곳서 150만 마리 건조
겨울 일교차 10도, 최적 입지
머리는 육수용, 꼬리는 사료용
수입산 맞서 가격 경쟁력 갖춰

 오후 4시 해발 730m 소백산 자락에 들어선 덕장 주변은 손이 시렸다. 기온은 영하 3도. 덕장 대나무에는 벌써 두 마리씩 묶인 명태들이 빈틈없이 걸려 산 바람을 쐬고 있었다. 장관이다. 덕장마다 명태 몸체가 온전한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대가리가 잘려 있다. 효자 도시복 생가를 지나면서 나타나는 용두리 덕장은 농업법인 사무실을 가운데 두고 모두 7곳이다. 현재 걸려 있는 명태는 대략 150만 마리 40억원 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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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에 황태 덕장을 연 신대섭씨.

 사무실에서 소백산에 황태 덕장을 처음 개발하고 관리 중인 신대섭(58)씨를 만났다. 명태는 반건조시키면 코다리, 말리면 황태로 불린다. 황태는 본래 강원도 인제가 주산지다. 그 황태가 5년 전 내륙 예천으로 남하한 것이다. 그 과정이 흥미롭다.

 신씨는 어물전·경매 등 42년 동안 물고기를 만지며 살았다. 그는 수산 한 길을 걸어 제법 돈을 벌었으나 보증 잘못으로 빈털터리 신세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간 경화까지 겹쳐 2010년 중국에서 간을 이식했다. 이후 절대 요양이 필요해졌다. 고향이 예천인 신씨는 덕장 인근에 집을 얻어 쉬며 서울로 병원을 오갔다. 그는 병원 식사에서 빠지지 않는 반찬이 황태인데 주목했다. 『동의보감』을 통해 피를 맑게 하는 등 수술 환자 회복에 황태가 좋다는 걸 안 그는 아예 황태를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명태를 가져와 소백산에서 건조 실험을 한 것이다. 소백산 자락은 겨울이면 바람이 차고 일교차가 10도나 돼 덕장이 들어설 적지였다. 그 길로 신씨는 몸담았던 수산물 가공업체 문경F&C(대표 최인수)와 황태 사업을 협의했다.

 황태의 국내 시장 규모는 4500억원대. 강원도 황태는 2000억원 어치쯤을 공급한다. 나머지는 중국에서 수입되거나 기계 건조 황태라는 게 신씨의 분석이다. 소백산 내륙이 황태 블루오션에 뛰어든 것이다. 거기다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진 것도 기회였다. 러시아에서 전량이 수입되면서 황태용 명태는 동해 아닌 부산에서 출발해 덕장으로 옮겨진다. 내륙 예천이 인제보다 오히려 물류비가 덜 들게 된 것이다. 거기다 신씨는 그동안 버려온 명태의 대가리를 별도로 처리해 육수 재료로 개발했다. “황태가 육수 시장에서 벌써 멸치를 제쳤어요.”

 황태 등뼈는 발라내 가루를 만든 뒤 고춧가루와 섞어 황태 고추장이 됐다. 사무실 옆에는 된장용 황태 메주도 걸려 있다. 또 꼬리와 지느러미는 잘라 닭 사료로 활용해 황태 닭을 키우는 등 그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이런 노력으로 소백산 황태는 중국산보다 가격을 더 낮추는 데 성공했다. 예천 덕장은 지난해 49억원 매출을 달성했고 올해는 80억원 달성이 목표다.

 황태 덕장은 이제 인근 문경과 상주·단양 산간에도 들어서고 있다. 소백산 황태벨트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신씨는 “국산 황태는 아직도 공급량이 절대 부족하다”며 “덕장 확보가 과제”라고 말했다. 예천군 황성진 축산관리계장은 “황태를 통해 예천에 100여 개 노인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읍내에는 가공공장도 생겼다”고 자랑했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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