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간절한 사랑, 땅 파기 능력으로 결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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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대형 육식공룡의 구애행위를 보여주는 화석이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세계 처음으로 대거 발견됐다. 암컷을 유혹하려는 아크로칸토사우루스 수컷들의 활기찬 발짓을 재현한 복원도. 그림 가운데에 짝짓기 하는 모습도 작게 보인다.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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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얻으려는 공룡의 몸부림은 뜨거웠다. 공룡 수컷은 암컷 앞에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두 발로 땅을 넓고 깊게 파서 나중에 태어날 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즉, 다른 수컷보다 자신이 배우자로서 우월하다는 것을 뽐내야 했다. 그래야 암컷의 ‘간택’을 받을 수 있다. 공룡세계에서도 사랑은 치열한 경쟁인 것이다.

미국 콜로라도서 구애 화석 첫 발견
곳곳에 넓게 파인 수컷 발짓 흔적
짝짓기 전 힘 자랑한 프러포즈 장소

소설 속의 얘기가 아니다. 대형 육식공룡이 짝짓기를 위해 구애행위를 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화석이 미국 콜로라도주 백악기 지층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맹식)는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서 육식공룡의 구애행위 화석을 찾아냈다고 7일 발표했다. 국제 저명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 7일 자에도 관련 논문이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문화재연구소와 미국 콜로라도대학 주도로 지난 3년간 진행됐다. 콜로라도주의 서부 두 곳, 동부 한 곳에서 수컷이 땅을 긁은 흔적이 50개 이상 무더기로 확인됐다. 크기는 지름 1~2m, 깊이 20~30㎝ 정도다. 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임종덕 연구관은 “지금까지 육식공룡의 구애 장소와 활동이 확인되기는 처음”이라며 “공룡도 사랑을 속삭이는 섬세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수컷 공룡이 땅을 긁는 것은 요즘 젊은 남성들이 클럽에서 유혹적인 자태를 과시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왜 구애화석인가=화석은 크게 골격화석(이빨·뼈)과 흔적화석(발자국·알·서식지)으로 양분된다. 흔적화석은 공룡의 습성·먹이·빠르기 등 행동학적 특징을 일러준다. 공룡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직접적 증거다. 이번 화석은 암컷의 환심의 사려는 수컷 공룡의 발짓이 남긴 흔적화석이다. 공룡이 둥지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파낸 흔적일 수 있으나 화석 주변에 알의 조각이 전혀 나오지 않았고, 초식공룡의 발자국 또한 남아있지 않아 육식공룡의 구애 흔적으로 확인됐다. 물떼새·타조 등의 수컷도 짝짓기 전에 땅을 긁어대는 과시행동을 한다.

임 연구관은 “땅을 팠던 흔적이 50여 곳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이번 장소는 여러 마리의 수컷이 공동 구혼장으로 사용했던 장소로 보인다”며 “요즘으로 치면 결혼 적령기 남성들이 ‘내 아파트 크기는 이 정도야’라고 자랑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공룡의 정체는=화석의 주인공은 백악기에 살았던 아크로칸토사우루스(Acrocanthosaurus)로 추정된다. 몸길이 11.5m, 무게 최대 7t, 두개골(머리) 길이 1.3m에 이르는 대형공룡이다. 발굴현장에서 나온 육식공룡 발자국의 크기와 형태가 아크로칸토사우루스의 발자국과 매우 유사했다. 아크로칸토사우루스는 당시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최상위에 위치한 대형 포식자였다.

◆어떻게 찾았나=이번 연구를 주도한 임종덕 연구관과 미국 콜로라도대학 마틴 로클리 교수는 2008년부터 우리나라 남해안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를 조사해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비교연구가 부족해 미국 쪽 자료를 보강하는 과정에서 공룡 발굴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찍게 됐다. 막바지 자료 분석 과정에 캐나다·중국·폴란드 화석전문가도 참여했다.

이번 발굴은 국내 공룡화석 연구를 재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는 경남 고성·진주, 전남 화순·보성 등 총 100여 곳의 화석산지가 보고됐고, 이 중 16곳은 문화재정이 지정·관리하고 있다. 대부분 알·발자국 등 흔적화석이다. 임 연구관은 “올해부터 국제비교연구를 유럽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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