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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 뚫은 실력파로 물갈이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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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산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사무실. 7명의 건교위원이 한 사무실에 여러 개의 테이블을 붙여 놓고 일하는 구조다. 지방의원에게 제 역할을 주문하기 위해선 이에 따르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부산=송봉근 기자

1961년 폐지됐다 91년 부활한 지방의회. 올해로 새로 태어난 지 15년이 된다.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무능, 비전문성, 서툰 일처리, 이권 개입 등은 지방의원들의 어두운 모습들로 남아 있다.

앞서 예를 든 관악구 의회는 정파들끼리 힘겨루기를 하는 통에 정작 자신들의 '본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지난해 관악구청이 상정한 조례는 50여 건인 반면 의회가 발의한 조례는 10건이 채 안 됐다. 예산심의인들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지방의회의 무기력에 대해 충남대 최진혁(행정학) 교수는 "우리 정치문화가 중앙 집중적이다 보니 세월이 흘러도 지방의회 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지방의회가 사회적인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거기 참여하는 의원들의 자질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방의회 관계자들은 '무보수 명예직'이 의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이라고 했다. 구로구 의원을 두 번 지낸 남승우 전 구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란 게 말만 그럴듯하지 실제론 이름 행세만 하고, 고장 살림을 고민하거나 의정활동을 열성적으로 해나가기는 어려운 조건"이라고 토로했다. 공공의 책임보다 자기 생업이 먼저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시의원.군의원들이 관청 접근이 쉽다는 점을 이용해 시청이나 군청의 발주 사업에 개입하는 일도 종종 볼 수 있다.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갖춰진 것도 지방의회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요인이다. 대부분의 지방의원은 따로 사무실을 갖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예산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부산시 의회의 경우 상임위별로 25평 정도 되는 사무실에 소속 의원들(10명 전후)이 함께 모여 일한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 의원회관에서 국회의원 한 명이 쓰는 사무실 크기와 비슷하다. 지방의원은 보좌진도 아예 없다. 그러나 올 7월 임기가 시작되는 새 지방의회는 수준이 좀 달라질 것 같다. 무엇보다 중산층 수준의 연봉이 지급되는 '유급제'가 도입되면서 대학교수, 회계사, 대기업 간부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유능한 인재들이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유급제 시대의 의원 희망자들은 무보수 명예직 시대처럼 지방의원직을 부업처럼 여기지 않는다.

관악구청에서 20년 근무하다 관악구의원 출마를 결심한 이모(60) 전 과장은 "주민들 숟가락 숫자까지 알 정도로 지역 사정에 훤하다"며 "구의원이랍시고 구청의 담당 국장, 과장에게 수사관처럼 호통치진 않겠지만 외부에서 알 수 없는 행정의 지연, 예산 낭비를 조목조목 지적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의원은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의 새로운 직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지방공무원 출신들은 "재력가나 토호들이 장악하던 지방의회는 이제 단체장에게 실질적인 지역정책을 제시할 능력 있는 독립적인 의원들로 점차 물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공자치연구원(원장 정세욱)의 이공환 전문위원은 "이번에 새로 도입하는 중선거구제에선 지역이 넓어 돈을 쓰기가 어려워지는 데다 정당공천제가 부작용은 있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람을 거르는 효과가 있다"며 "과거 어느 때보다 지방의원 입후보자들의 자질이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고 예측했다.

◆ 지방의원=행정부를 견제.감시하는 국회의원처럼 소속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안 심의.의결 ▶행정사무 감사▶조례 제.개정 등의 권한을 갖는다. 서울특별시와 광역시 6곳(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 및 9개 도 등 16개 광역자치단체 소속 의원은 광역지방의원, 일반 시와 군.구(서울 및 광역시의 자치구) 등 234개 기초자치단체 소속 의원은 기초지방의원이라고 한다.

◆ 특별취재팀=전영기(팀장).이재훈.양영유.김창규.전진배.이가영 기자 <chunyg@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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