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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제2 인생 열자" 전문직 인재들 돌아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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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재가 지방정치에 몰려온다. 5월 31일 치러지는 지방의회 선거가 이들을 자극한다.

팍팍한 도회 생활을 접고 황토내음 풍기는 고향 품에 안기려는 출향인들, 지역에서 쌓은 성취를 공공의 영역으로 넓히려는 토착인들, 고령화와 고용불안 시대에 '내 고장 살림꾼'으로 인생전환을 모색하는 샐러리맨들이 그들이다.

태백시 강원관광대학의 식품조리학과 정교수인 장상근(57) 박사도 그런 경우다. 그는 5.31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장 교수는 김치유산균 연구로 2004년 정부가 주는 '과학상'을 받았다. 지역 내 식품산업 사업체 13개를 키우는 학내 '창업보육센터'의 장이기도 하다.

대학교수가 국회의원이나 도의원도 아니고, 인구 6만 명 도시의 7명이 정원인 시의회의 멤버가 되려는 이유는 소박하다. 태백시 의회만이 의결권한을 갖고 있는 시 '조례'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가 만들려는 조례는 '시의 예산 지원을 받아 성장한 사업체는 본사를 일정기간 태백시 안에 두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장 교수는 "태백의 대학과 시에서 도움을 받은 사업체가 다른 곳으로 사업장을 옮겨 지방세와 고용의 효과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시의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이런 조례의 필요성을 태백시 요로에 무던히도 강조하고 다녔지만 늘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것이다.

1991년 부활한 지방의회는 이처럼 장 교수 같은 '전문직 지역주민'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5년의 연륜이 쌓이면서 지방의회가 하는 일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5.31 지방선거가 인재를 끄는 요인 중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란 점도 있다. 정년퇴직 연령대의 실력파 인사들이 지방선거를 제2의 인생 전환점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게다가 이번부터 지방의원들에게 중산층 생활수준의 봉급(의정활동비)이 지급된다. 전국 3500여 명의 지방의원에게 각각 4000만~7000만원의 연봉이 주어지니 여간 매력적이지 않다. 여기엔 약 2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서울의 언론사 간부 이모(56)씨는 지난해 12월 사표를 내고 고향 경주에 내려가 시의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35년 만의 귀향이다. 귀향은 40대 이후 그의 꿈이었으나 생업 때문에 결행할 수 없었다. 이제 그 꿈의 도전은 시의원직이 생업이 되는 환경이 조성됐기에 가능했다.

30~40대 전문직이나 대기업 직장인들 중에서도 지방의원 출마를 저울질하는 사람이 많다.

부산의 회계사 윤모(42)씨와 공기업 중견간부인 이모(45)씨는 각각 금정구와 연제구의 구의원 선거에 나갈 것을 검토하고 있다. 광주의 치과의사 양혜령(44)씨는 광주광역시 의회에 비례대표로 나가기 위해 모 정당에 공천을 신청할 생각이다. 이들은 '선거에서 지면 패가망신한다'는 돈선거 문화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것도 자신들의 지방선거행을 촉진했다고 말했다.

상지대 정치학과 정대화 교수는 "고령화사회, 기업의 구조조정, 지방가치에 대한 높아진 인식이 실력파 인재들로 하여금 내 고장 살림 정치에 참여케하는 흐름의 배경인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정 교수는 10여 군데 지방을 순회조사한 결과 "정당이 기초의원의 후보를 공천할 수 있는 제도가 생기는 바람에 출마 희망자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출마 희망자가 정당공천을 받기 위해 국회의원이나 당원들의 눈치를 보고 심지어 불법적인 '공천헌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내 고장 살림 정치를 키우기 위해 예산을 푸는 것까진 좋았지만, 정당을 개입시킨 것은 잘못이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의 지난해 12월 6~7일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52%가 정당공천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특별취재팀=전영기(팀장).이재훈.양영유.김창규.전진배.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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