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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일수록 제조업 집중 … 국가신용도 배경으로 시장 개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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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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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올해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 예서 주저앉지 않는다면 중요한 건 돌파구다. ‘10대 그룹’ 주력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도 불황의 파고를 벗어날 묘수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정보기술(IT)·자동차·석유화학·조선·유통·건설 등을 망라한 ‘최고의 사장’들이 중앙일보 설문을 통해 업종별 풍향과 위기 돌파법을 밝혔다.

10대 그룹 주력 CEO들의 제언
미 금리 인상, 중국 위축 등이 변수
중장기 계획 수립·실행 쉽지 않아
조직 유연해야 아이디어 떠올라
무리한 성장보다 기본기가 중요

 권오현(64) 삼성전자 부회장은 ‘조직 문화’를 더욱 유연하게 바꿔 아이디어 발산의 장으로 삼는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IT 업계의 올해 화두가 ‘치열한 기술 경쟁’과 ‘신 시장 창출’로 예상되는 만큼 아이디어를 통한 차별화한 제품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판단에서다.

 이원희(56) 현대자동차 사장은 “생산·운영 효율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무리한 성장 보다는 원가 경쟁력 같은 기본기를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간 체력전을 위해 뿌리부터 살피겠다는 전략은 석유화학 업계도 마찬가지였다. 김창범(61) 한화케미칼 대표는 “저유가로 정유사·유화업체간 경쟁 구도가 변하고 있다”며 “연구개발(R&D) 강화를 통한 원천 기술 확보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적대적 변수를 헤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 순발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세계적 불황으로 시련을 겪은 대한항공 지창훈(63) 총괄 사장은 “항공업계의 경우 저유가 기조와 주요국 통화 정책의 불확실성이 최대 과제”라며 “비상 경영 계획 등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소득 줄고 1인 가구 늘어 소비 회복 더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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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수성(守城)’에만 머물진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공격적으로 신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역발상도 많았다. 임헌문(56) KT 사장은 “신흥국보다 높은 국가 신용도를 등에 업고 신시장 개척을 적극 시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원준(60) 롯데백화점 대표는 “급변하는 고객 요구에 맞춰 최근 일산 킨텍스에서 전시장 대관 판매 등을 시도했다”며 “저성장 흐름 속에서 고객 분석을 통해 오프라인 쪽의 영업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기업의 노력과 별개로 정책 면에서 ‘제조업 재인식’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대차 이원희 사장은 “자동차 업계는 수익성 악화는 물론 (친환경·스마트카 등) ‘산업 구조’ 변혁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이라며 “세계적 저성장 과정에서 선진국·신흥국 정부 모두 제조업 육성에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병용 GS건설 사장도 “제조업이 하이테크 산업으로 전환해야할 시점”이라며 정부 재정 지원과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정도현(59) LG전자 대표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각 경제주체들이 컨센서스(교감)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CEO들이 우려하는 경영의 적대적 변수는 크게 2개로 압축됐다. 먼저 ‘미국 금리 인상’은 이원희 현대차 사장·정도헌 LG전자 대표·김창범 한화케미칼 대표 등 5명이 우려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상반기 금리 추가 인상→신흥국 원자재 투자 자금의 미국행→신흥국 경제 위축’의 악순환 시나리오를 거론한다. 신흥국 비중이 높은 우리 수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특히 올 상반기 추가 금리 인상이 유력한 가운데 미 연방준비제도(Fed)에 매파 성향의 이사들이 새로 가세해 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장률 2.6~2.8%, 정부 예상보다 낮아

 이와 함께 ‘중국발 악천후’를 지적한 이들도 절반에 달했다. ‘바오류(保六, 연 6% 성장)’로 대표되는 중국 경제의 브레이크 속도가 올해 실적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정유·자원개발 등이 주력인 SK이노베이션 정철길(62) 부회장은 “중국의 경기 위축에 따른 ‘제품 수요’ 감소가 업계의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으로 봤다. 세계적 조선업 불황으로 지난해 크게 고전한 권오갑(65) 현대중공업 사장도 “중국 경기 부진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의 회복 지연으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게 쉽지 않다”고 했다.

 안방 시장도 온기가 따뜻하진 않다. 임헌문 KT 사장은 “전반적인 소비 여력 둔화가 길어지면 ‘경기 방어’의 대표적 업종인 통신도 타격이 예상된다”고 짚었다.

 이원준 롯데백화점 대표는 “중산층 이하의 가처분 소득 감소와 1인 가구의 증가세로 소비 심리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런 기상도는 성장률을 보는 CEO들의 눈에 그대로 배어 있다. 총 4명의 CEO들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민간연구소들이 예측한 2.6%~2.8% 수준으로 내다봤다. 정부 기대치(3.1%)보다 낮다.

 임병용 GS건설 대표는 2% 성장으로 가장 낮은 전망치를 제시했다. 그는 “가계·기업 대출 제한과 각국의 건설 발주 물량 감소에 따른 부동산 경기의 급속 냉각을 방지할 연착륙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에서 ‘경기 회복’ 시점도 “2017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한 CEO들이 7명으로 압도적이었다. 다만 올 하반기부터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본 CEO도 2명이었다. 최소 올 상반기까진 ‘인내 경영’으로 견뎌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에 따라 올해 ‘투자비’를 가장 많이 집행할 곳도 ‘기존 사업장’으로 나타났다. 6명의 CEO들이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하겠다”고 답했다. 신성장 동력 발굴과 인수합병·인재개발 같은 투자 항목은 일단 뒤로 돌려졌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은 “기초 체력을 다지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며 “핵심 역량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고 책임경영 체제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투자비 규모는 “지난해 수준을 유지한다(4명)”는 계획에 못지않게 “더 늘리겠다(4명)”는 응답들도 나와 가뭄속 ‘단비’ 역할을 할 지 주목된다.

◆특별취재팀=김준술·박태희·함종선·전영선·이수기·손해용·이현택·김기환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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