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신승남 골프장 성추행은 무고 … 후배 동업자가 사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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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때 검찰총장을 지낸 신승남(71·사진)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경기경찰청으로부터 “성추행 사건이 접수됐으니 나와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고소인은 신 전 총장이 회장으로 있는 경기도 포천 골프장의 당시 여직원 김모(24)씨였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신 전 총장이 2013년 6월 22일 숙소로 들어와 강제로 껴안는 등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신 전 총장은 성추행범으로 낙인찍혔다. 그해 9월 터진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캐디 성추행 사건에 이어 사회 지도층 인사의 비뚤어진 성의식을 보여준 단적인 사건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내 소유 골프장서 내가 스캔들?”
신 전 총장이 직접 증거 수집 나서
사무실 ‘지워진 파일’ 결정적 단서
피해 주장한 여직원 부녀 기소돼
아버지 “성추행 당한 딸 기억 정확”

 하지만 고소 사건 발생 한 달 뒤 경찰은 신 전 총장에 대해 “고소 기간(1년)이 지나 처벌 대상이 아니다”며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신 전 총장이 자신의 차량 통행기록과 골프장 라운드 일지 등을 뒤져 숙소를 방문한 게 6월이 아닌 5월이었다는 점을 입증해 낸 것이 결정적 근거가 됐다. 김씨가 고소장의 사건 발생 일자를 한 달가량 늦춰 허위로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엔 신 전 총장이 반격에 나섰다. 신 전 총장은 “있지도 않은 성추행을 만들어 명예를 훼손했다”며 김씨와 김씨의 아버지(50) 등을 검찰에 고소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성추행 피해자가 무고를 했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일이 벌어졌다.

 의정부지검은 최근 여직원 김씨를 무고 혐의로, 거짓 성추행 내용을 딸에게 작성토록 한 뒤 이를 언론에 흘려 기사화하게 만든 아버지는 무고 및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29일 밝혔다. 검찰은 또 경기도 화성의 골프연습장 지분을 놓고 신 전 총장과 다툼을 벌였던 고교후배이자 검찰 수사관 출신 마모(54)씨는 무고 및 공갈미수 혐의로, 신 전 총장의 전 운전기사 이모(56)씨는 공갈미수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겼다. 마씨와 이씨는 지난해 10월 신 전 총장을 만나 “골프연습장을 시세보다 싼값에 넘기지 않으면 성추행 사건을 폭로하겠다”는 취지의 협박을 했다고 한다.

 28일 본지 기자와 만난 신 전 총장은 “검찰총장 출신인 내가 명예회복을 위해 지난 1년 동안 수사관처럼 증거를 모으고 배경을 추적해 무고임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추행이 없었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었다”며 “김씨의 기숙사 방을 찾았을 때 현장에 다른 직원 2명도 함께 있었고 ‘잘해 보자’며 어깨와 머리를 다독인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결정적 단서는 신 전 총장이 운영하던 경기도 화성의 골프연습장 사무실에 있던 컴퓨터에서 나왔다고 한다. 동업자였던 마씨가 신 전 총장의 일을 도울 때 사용하던 것으로 두 사람이 사업 지분을 놓고 다툰 이후 방치돼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 전 총장은 컴퓨터 전문가를 동원해 지워진 파일을 복원했다.

뜻밖에도 거기서 마씨 등이 김씨에게 성추행 사건을 만들 것을 종용하는 취지의 녹음을 발견했다. 신 전 총장은 “마씨가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동조자들끼리 다툼에 대비해 녹음해 놓은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 녹음은 검찰 조사에서 결정적 증거가 됐다.

 신 전 총장은 “김씨를 부추겨 성추행 스캔들을 퍼뜨린 이들이 더 있다고 확신하는 만큼 끝까지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아버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골프장 직원들은 성추행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 신 전 총장만 안 그랬다고 하고 검찰이 그걸 받아준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2013년 6월에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딸의 기억이 정확한 만큼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다툴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주·장혁진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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