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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에 탈북한 우리가 노숙인 사정 잘 알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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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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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대학생 봉사단체인 유니시드 회원들이 26일 서울역 앞에서 노숙인 도시락 봉사 활동을 가졌다. 유니시드(Uniseed)는 ‘통일의 씨앗’을 의미한다.

“우리 탈북자를 따뜻하게 품어준 대한민국에 조금이나마 보답하자는 마음에서 거리로 나왔습니다.”

탈북자 대학생 봉사단체 유니시드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서울역 앞에서
지난해 7월부터 무료 도시락 봉사
“탈북자 수혜자로만 보는 편견 깰 것”

 미세먼지 경보에 겨울비까지 오락가락 한 지난 26일 오후 서울역 광장. 탈북 대학생 봉사단체인 유니시드의 엄에스더(32·한국외대 중국어과 4학년) 대표와 회원 30여명이 노숙인을 위한 도시락 봉사에 나섰다. 이들이 내건 플래카드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되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적혀있었다.

 인근 자선단체의 주방을 빌려 회원들이 오전 내내 정성껏 마련한 도시락 200개를 풀자 노숙인들이 길게 줄을 섰다. 탈북 대학생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밥과 국을 챙겨 건넸다. 노숙인들은 “크리스마스인 어제부터 굶었는데 이렇게 따뜻한 밥을 먹게 되니 너무 좋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고로 양다리를 절단했다는 한 노숙인이 다가오자 함북 청진이 고향인 전수현씨가 다가갔다. 전씨는 “맛있게 드시고 힘내세요. 빈 그릇과 쓰레기는 저희가 치울게요”라며 도시락을 건넸다.

 인천에 산다는 홍모(78)씨는 받아들었던 도시락을 다시 가져왔다. 홍씨는 “지나가다 밥 한 끼를 공짜로 먹으려했지만 탈북 대학생들이 어렵게 마련한 도시락이란 소릴 듣고 노숙인에게 주는 게 좋겠다 싶어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말했다.

 엄 대표가 노숙인들을 위한 도시락 봉사에 나선 건 지난해 7월부터다. “배고픔 때문에 북한을 탈출한 우리가 노숙인들의 힘든 사정을 가장 잘 알지 않느냐”며 친구 4명과 의기투합했다. 이후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역 2번 출구 앞에서 도시락 봉사에 나섰다. 그 사이 유니시드의 취지에 공감해 동참한 탈북 대학생만 33명이다. 남한에서 태어난 대학 친구 몇몇도 힘을 보탰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있었다. 북한 음식을 통해 남북이 하나 되게 하자는 생각에 두부밥 700개를 만들었는데 호응이 좋지 않았다. 노숙인들에게는 따뜻한 밥과 된장국이 최고였다. 반찬도 김치와 멸치, 돼지불고기로 단순화했다. 한 번에 200개의 도시락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 60만원은 회원들이 조금씩 보태거나 팬시용품을 제작해 팔아 조달했다.

 유니시드는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9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사장 손광주)이 주관한 ‘착한(着韓) 봉사단’에 선정됐다.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한 탈북자들이 만든 단체 가운데 장애인 지원이나 불우이웃 돕기에 적극적인 12곳 중 하나에 꼽힌 것이다. 재단 관계자는 “탈북자를 수혜자로만 보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깨뜨리고 남북 화합의 중요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유니시드의 활동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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