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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짚코드 개발 라종민 회장, 뜻 밖의 대통령 표창 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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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별관에서 열린 `도로명주소 사용 활성화 유공 포상`에 참석한 라종민(49)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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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당황스럽습니다. 같은 정부인데 한쪽은 일을 뺏어가고 다른쪽은 잘했다고 상을 주니…."

23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별관에서 열린 '도로명주소 사용 활성화 유공 포상' 시상식장에서 만난 ㈜짚코드 라종민(49) 대표이사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라 대표는 지난 1999년 '주소일괄변경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사·이직으로 주소를 옮길 경우 이용자가 가입한 금융·통신·유통사에 등재된 주소를 한번에 바꿀 수 있게끔 한 서비스다. 이에 투자한 금액만 60억 원이라고 한다. 일반 이용자에게는 무료로 제공하고 기업이나 금융권 회사와 제휴를 맺어 수익을 내왔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은 라 대표는 이날 행정자치부 추천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시상식에 앞서 만난 라 대표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두웠다.

"내년 1분기부터 금융감독원이 저희와 같은 서비스를 정부 주관으로 시행합니다. 벌써 저희와 제휴를 맺은 금융사 2곳이 '금감원 방침에 따라야 한다'며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내년부터 저희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라 대표에게 이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 6월이었다. 금감원이 '국민체감 20대 금융관행 개혁과제'를 발표하며 '금융서비스 주소 일괄변경 시스템 구축'을 17번째 개혁과제로 포함시켰다. 금감원 측은 금융사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짚코드와 제휴를 맺은 회사는 60여 곳. 이중 금융사가 80%를 차지한다. 라 대표는 금감원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금감원 측에 연락을 했지만 "아는 바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 국민신문고에 억울함을 호소하자 그때서야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미 청와대 보고가 올라갔으니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더군요. 오히려 저를 '다른 일 알아보라. 다른 거 할 거 없냐'는 식으로 몰아갔습니다. 그 때 제가 오죽하면 '여기 취조 받으러 온 거 아닙니다'라고 말을 했을까요."

현재까지 금감원의 추진 정책은 바뀐 것이 없다고 한다. 계획대로라면 라 대표는 16년간 이어온 사업을 접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라 대표에게 지금 가장 걱정인 것은 지금까지 함께 회사를 일궈 온 11명의 직원들이다. 라 대표에 따르면 회사에서 가장 어린 직원의 나이가 38세라고 한다. 직원들의 반응을 묻자 한숨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38세인데 지금 어디 다시 취업이 가능하겠습니까. 요즘 직원들 하는 말이 '퇴근해서 잠 자고 있는 가족들 모습을 보면 잠이 안 온다'고 합니다."

오후 3시 40분. 라 대표는 상을 받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 시상식 진행자의 말이 이어졌다. "정부 3.0 시대를 맞아 주소일괄변경 서비스를 통해 국민에게 봉사한 공로가 인정 돼 대통령 표창을 시상합니다." 상을 받고 내려 온 라 대표는 말을 이었다.

"'창조경제'가 이번 정부 핵심 과제 아닙니까. 그런데 오히려 정부가 나서 중소기업 먹거리를 뺏는 셈입니다. 오늘 저에게 상을 준 행자부는 이런 일을 알고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박병현 기자 park.b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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