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누리과정 하나도 못 풀면서 저출산 극복할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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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적으로 인구가 국력인 시대다. 인구가 쪼그라들면 소비가 줄고, 생산활동 인구가 모자라 경제성장 동력이 떨어진다. 저출산 해소는 우리가 당면한 최대 과제다. 15년째 출산율 1.3명 이하의 초저출산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자 정부는 최근 종합대책을 내놨다. 2020년까지 5년간 약 200조원을 들여 현재 1.21명인 출산율을 1.5명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출산율 높이려 5년간 200조원 투입하는데
새해 3~5세 무상보육 4조원도 확보 못해
보육대란 우려, 정부·교육청 갈등 해소를

 국·공립 유치원과 직장어린이집 확대 등 가짓수가 200개가 넘는다. 박근혜 대통령도 “무상보육과 일·가정 양립 등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지만 출산율이 정체되고 있다”며 강도 높은 시행을 주문했다. 새누리당도 어제 저출산대책특위를 열고 매주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동참해야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3년째 시행 중인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교육) 예산 파행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새해가 두 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전국 130만 명에게 쓸 예산 4조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벽두부터 보육대란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 정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예산 떠넘기기로 대립하고, 지방의회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예산을 주물러 화(禍)를 키웠다.

 박 대통령 대선 공약인 누리과정은 유치원(69만 명)과 어린이집(61만 명)에서 맡는다.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던 것을 정부가 관련 예산을 각 교육청이 지방교육재정부담금에서 편성토록 일원화하면서 불협화음이 생겼다. 13명의 진보 교육감은 처음엔 전면 반대하다가 겨우 유치원 예산은 짰지만, 어린이집은 정부 책임이라며 대부분 거부했다. 그런 와중에 지방의회가 예산 심의과정에서 유치원·어린이집 예산을 없애거나 뒤바꿔 논란이 커졌다. 광주시와 전남도의회 등은 유치원 예산까지 전액 삭감했고, 여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 등은 유치원 예산을 어린이집으로 돌려 버렸다. 이런 파행 탓에 전체 4조원의 누리 예산 중 겨우 1조원만 확보됐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와 교육청, 지방의회는 갈등과 반목을 접고 조속히 사태 해결에 나서기를 바란다. 누리과정 하나도 못 풀면서 어떻게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 보조금을 깎고 엄중 제재하겠다”고만 말고 “전체 빚이 18조원이나 돼 학교 화장실 고칠 돈도 없다”는 교육청 목소리도 들어봐야 한다. 교육감협의회가 21일 열자고 제안한 여야 대표, 교육부·기획재정부 장관 5자 회담도 검토하길 바란다. 특히 교육감과 지방의회는 각성해야 한다. 아이들을 볼모로 언제까지 소모적 예산 이념 논쟁을 벌일 셈인가. 인구 늘리기가 제1 과업인 몽골은 300만 명째 국민이 된 아이 울음을 전국에 생중계하고, 대통령이 직접 축하를 했다고 한다. 우리의 대통령과 정부·정치권·교육감·지방의회가 깊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