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내 면세점 시장 망치고 있는 불량 면세점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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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시장 환경에 무지하고 이념에 치우친 탁상입법이 시장을 어떻게 망치는지 ‘시한부 면세점법’을 통해 보게 될 것 같다. 이 법은 면세점 특허 기간을 기존 10년에서 5년으로 줄인 관세법 개정안으로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의해 발의돼 2013년 통과됐다. 당초 의도는 재벌면세점의 독과점을 줄이고 중소 면세점과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올해 기존 사업자였던 롯데 면세점과 SK 워커힐 면세점이 탈락하고 두산·신세계가 사업권을 가져갔으며, HDC 신라와 한화가 신규 사업자로 선정됐다. 하나투어 컨소시엄 등 중소기업 면세점도 진출했지만 면세점시장은 여전히 대기업 위주 다. 면세점업은 초기 막대한 투자가 요구되고 외국 브랜드들과의 협상과 바잉 파워가 관건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대기업형 사업으로 분류된다.

 더 큰 문제는 국내 면세점의 글로벌 경쟁력이 흔들리는 조짐이다. 최근 외국 명품업체들이 ‘5년 면세점’에 대해 관세청에 공식 항의서한을 보냈다. 명품업계 관계자들은 “문닫는 면세점에서 떨이세일을 하고 있어 상품전략을 위태롭게 하는 데다 이런 일이 5년마다 반복된다면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브랜드 이미지 지키기를 가장 우선시하는 명품 브랜드들은 신규 업체와의 거래도 보수적이다. 이 때문에 이달 문을 여는 HDC신라와 한화 면세점도 유명 명품 브랜드와 협상을 끝내지 못해 상품 구색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손님을 끌 준비조차 안 된 것이다.

 게다가 중국 소비자 유치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대규모 면세점 진출이 가속화하면서 유커 유치 경쟁도 치열해지는데, 중국은 내년 1월 1일자로 소비재들의 수입관세를 대폭 내린다. 해외 쇼핑객의 구매력 유출을 막고 자국 내 소비로 돌리겠다는 의도다. 이처럼 글로벌 시장환경은 확확 바뀐다. 경제 입법의 목적은 재벌이 돈 못 벌도록 발목잡는 게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