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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전국에 울려 퍼진 ‘몽골진’의 울음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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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노진호
노진호 기자 중앙일보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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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호 사회부문 기자

우리나라보다 7.5배 큰 영토를 가졌지만 인구는 16분의 1도 안 되는 나라에서 뭘 배울 수 있을까. 지난 2일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들었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몽골 정부 관계자의 얘기에 금세 고개가 끄덕여졌다. “몽골에선 인구 문제가 정부 안보에 속해요. 몽골 헌법에서도 어머니와 아이의 안녕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정책적으로 인구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몽골 헌법은 출산하는 경우 국가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을 권리와 가족, 모성, 아이의 안녕을 보장받을 권리를 못 박고 있다. 또 아이 한 명당 18세까지 아동수당이 나가고, 임신부와 젖먹이를 둔 엄마는 공금 유용 등 중대범죄가 아니고선 해고되지 않는다. 올해 초 300만 번째 국민이 태어났을 땐 울음소리가 전국에 생중계됐고 대통령은 ‘몽골진’이란 이름과 집 한 채를 선물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몽골 부부의 평균 자녀 수는 4.5명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16일 ‘2030세대가 결혼·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쓴 기사가 나가자 한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툭하면 야근’ ‘경력 단절’ ‘태어날 아이에게 미안해’ ‘수천만원 대출에 출산 엄두 못 내’ 전부 다 내 이야기네.”

  친구에게 위로라도 건넬 요량으로 “결혼 후 신랑과 함께 만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내가 결혼할 거라니까 ‘회사 그만두느냐’고 먼저 묻더라”며 답이 왔다. 저출산·고령화로 2050년 우리나라 생산인구는 3분의 2로 줄고, 성장률은 1%대로 떨어진다지만 엄혹한 현실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인구를 국가적 문제로 보고 대통령 직속위원회를 만들었지만 대통령이 바뀌면서 찬밥 신세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위원회를 보건복지부 장관 직속으로 격하시켰고, 박근혜 대통령은 출범 2년 만에야 위원회를 열었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가장 큰 위기는 위기일 때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1921년 중국 독립 당시 몽골 인구는 60만 명에 불과했고 당시 외신들은 “몽골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지난해 독립 94년 만에 역대 최고 신생아 수(8만2839명)를 기록하고 올해 1월 300만 인구를 달성했다. 소드놈존도이 에르덴 인구개발사회복지부 장관은 인터뷰 내내 “몽골 발전의 키포인트는 인구 개발”이라고 강조했다. 동행 취재했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종서 박사는 “한국보다 지원 수준이 낫다고는 볼 수 없지만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히 배울 만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초 전국에 울려 퍼졌던 몽골진의 울음소리 뒤에는 몽골인 전체가 공유하던 절실함이 숨어 있었다.

노진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