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 40대 덕선이가 들려주는 '응답하라 1988' 이야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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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덕선이네 가족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인기가 뜨겁다. 닐슨코리아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5일 방송된 10화 ‘MEMORY’ 편이 유료 플랫폼 가구 평균 시청률 13.9%, 최고 시청률 14.8%를 기록했다. 이는 케이블채널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이다.

실제로 느껴지는 반응도 뜨겁다. 1988년에 관한 고증과 관련해 “맞다”, “틀리다”라며 엇갈린 의견들이 맞서고, 복고 아이템이 재조명되며 그 시대 노래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그 시절 개그프로 ‘유머 일번지’에서 나왔던 “아이고~ 김 사장~ 반갑구만 반가워요”라는 인사법이 드라마에 나온 이후로 인기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전작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가 그 시절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을 다뤘다면, 이번 ‘응답하라 1988’은 쌍문동 골목에 모여 사는 다섯 가족들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골목에 모여 사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가장 반가운 사람은 아마 그 시절을 그들과 같은 또래로 보낸 사람들일 것이다. 그 덕분인지 중장년층도 응답하고 있다. 성별·연령별 시청률에서도 여성 40대와 남성 40대가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 40대들의 솔직한 감상평이 궁금해 1988년에 10대 시절을 보낸 40대 A, B 씨를 모시고 리액션 비디오를 찍어봤다. 1988년 당시 A씨는 고1, B씨는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쌍팔년도 세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직접 ‘쌍팔년도 이야기’를 들어보자.

10대가 궁금할 쌍팔년도 이야기

40대 덕선이들의 리액션에서 지금의 10대들에겐 생소하거나 궁금해할 만한 소재들을 뽑아봤다. 일명 쌍팔년도 사전!

A  “얘는 머리 나빠지겠다.”
B  “공부 못하는 것도 다 연탄 가스 탓이라고 말했었지.”

연탄가스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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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은 새로 불을 붙이기가 어려워, 연탄불이 꺼지기 전에 새 연탄을 위에 올려 꺼뜨리지 않게 하는 것이 포인트. 구멍을 잘 맞춰야 한다.

구멍을 잘 맞춰야 한다.지금은 가스보일러가 대부분이나 1980년대만 해도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곳이 많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창고에 연탄을 들여놓는 것이 김장만큼이나 큰일이었다. 눈이 오면 미끄러지지 말라고 연탄재를 길 위에 뿌리기도 했다. 연탄가스(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지는 경우도 많았다. 일산화탄소를 일정량 이상 들이마시면 세포 호흡에 장애를 일으킨다. 두통, 현기증, 메스꺼움 따위의 증상이 나타나고 기억 상실 등의 후유증을 남기기도 하며 심하면 숨지기도 한다.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가 가스를 많이 마셔 연탄가스를 마시고 동치미를 먹는데 이는 똑똑한 대처법이다. 동치미 국물 속에는 유황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연탄가스에 중독됐을 때 마시면 중독 증상이 회복된다.

A  “클라라 아빠, 코리아나 멤버잖아.”

코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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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덕선이의 말처럼 지금의 10대에게 코리아나라는 그룹은 클라라 아빠 이승규 씨가 속한 팀으로 알려져 있다. 코리아나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의 대미를 장식한 공식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부른 팀이다. 전 세계적으로 1,700만 장의 싱글 판매고를 올렸다고 추정되며 독일, 일본, 스페인 등을 비롯한 17개국에서 1위를 차지한 원조 한류스타. 사실 코리아나가 처음 올림픽 주제곡을 부른다고 했을 때는 교포들이 만든 ‘삼류 가수’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 이들은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당시 해외 음악 정보를 얻기 힘든 국내에서는 듣보잡 그룹이었을 뿐. 하지만 노래가 공개되고 올림픽이 열리며 이들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올림픽 명성으로 코리아나는 펩시 등의 CF를 찍기도 했는데 클라라가 밝힌 얘기에 따르면 당시 개런티가 무려 5억이었다고 하니 그 당시 코리아나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A  “전화번호부 집집마다 다 있었다.”
   “똑같은 이름 몇 명 있었는지 다 세어봤다.”

전화번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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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8’에서 대입 6수생 정봉이는 전화번호부 정독을 취미로 삼고 있다. 지금은 집에 전화번호부를 구비해 두지 않지만 그 시절만 해도 집집마다 꼭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있었다. 전화번호부에는 전화 가입자의 전화번호, 성명, 주소가 함께 게재되어 있고 그 두께 또한 엄청났다. 흔히 두꺼운 책을 보면 ‘전화번호부 같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1989년엔 전국 발행 부수가 1000만부를 돌파하고, 최고 2000만부 이상 찍었지만 1990년대 후반 114 안내와 인터넷이 생기면서 찬밥 신세가 된다. 공공도서관에서 옛 연도별 전화번호부를 아직 만나볼 수 있다.


B  “얼마 전에 ‘1박 2일’에 나와서 오랜만에 신랑이랑 해봤는데 27점?”

이름점

오랜 기간 전수해온 방법이기에 10대들도 해봤을 수도 있다. 그 시절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무조건 하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흔히 먼저 이름을 쓴 사람이 뒤에 이름을 쓴 사람을 좋아하는 확률이 00%라고 계산했다. 택이로 열연 중인 박보검과 기자의 이름으로 이름점을 해봤다.

박보검의 이름을 먼저 썼기에 박보검이 한은정을 좋아할 확률이 63%다. 대부분 좋아하는 사람 이름을 먼저 쓰고 한 번, 본인 이름을 먼저 쓰고 한 번, 두 번 이름점을 한 후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 확률이 더 높으면 좋아했었다. 지금이라면 엑소 멤버들과 이름점을 해보는 학생들이 많겠지만 그 당시에는 변진섭, 소방차, 장국영, 이미연,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 등 80년대 스타가 이름점의 상대로 장식됐다.

B  “델몬트 주스 다 먹고 나면 물병으로 사용했다.”

델몬트 유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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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에 든 오렌지 주스는 집들이 선물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페트병에 들어 있는 오렌지 주스가 유리병에 담겨있던 시절이 있었다. 뚱뚱한 유리병은 제법 무거워 손에 잡기도 불편했지만 다 마신 후 재활용하기 딱 좋은 아이템이었다. 집집마다 오렌지주스를 다 먹은 후 보리차를 담는 병으로 쓰곤 했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는 ‘델몬트 유리병이 사라진 이유’라는 글이 돌기도 한다. 델몬트에서 처음 만들 때 병을 회수해서 10번 정도는 재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 비싸고 튼튼하게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집에서 물병으로 쓰는 바람에 제대로 회수가 안 돼 이제 플라스틱으로 만든다는 것. 그 정도로 내구성이 튼튼했던 유리병이라 지금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B  “6학년 때 읽었던 게 등줄기를 만졌다는 둥 어쨌다는 둥 그런 내용”
A  “하이틴 로맨스 책상 밑에 숨겨서 봤다.”

하이틴 로맨스, 할리퀸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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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 ‘장교와 프린세스’ [사진=’응답하라 1988′ 영상 캡처, tvN]

덕선이 친구 왕자현은 하이틴 로맨스 보급책으로 나온다. 해외에서 다양한 장르로 발전되어 온 로맨스 소설은 1970대 무렵 한국에도 상륙했다. 당시에는 해적판이었으나 저렴한 문고판으로 발간된 후 여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86년 11월에 할리퀸이 들어오고 로맨스 소설의 인기는 더욱 불이 붙는다. 서로 돌려보고 수업시간 책 사이에 껴놓고 몰래 보기 일쑤였다. 90년대 들어 책 대여점이 생긴 후에도 로맨스 소설은 계속 성행했다. 직접 구입하지 않아도 저렴한 돈으로 충분히 빌려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학생은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는다. 다만 인터넷 소설로 그 형식이 다르게 읽고 있을 뿐. 로맨스 소설은 여전히 건재하다. 덕선이가 읽던 ‘장교와 프린세스’는 신영미디어에서 여전히 발간되고 있으니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그 형식이 변화할 뿐 로맨스 소설은 계속 영원할 것 같다.

A  “바나나는 정말 비쌌다.”
B  “바나나 1개(한송이 아님) 500원, 그때 짜장면이 500~1000원 했었으니 되게 비쌌던 거다.”

물가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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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도의 일반 버스요금은 140원으로, 토큰을 사용했다. 학생은 100원에 회수권을 구입해 사용했다.

지금은 저렴한 과일에 속하는 바나나가 1988년엔 엄청 비싼 과일이었다니 지금의 10대들은 신기하게 느껴질 거다. 그렇다면 1988년과 2015년 물가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해진다.

사단법인 한국물가정보가 1970년부터 현재까지 물가정보를 집대성한 ‘종합물가총람’에 따르면 1988년 시내버스 요금은 140원, 현재 버스 요금이 1300원이니 버스 요금은 27년 새 9.3배 올랐다. 당시 라면 한 봉지는 100원, 지하철 기본요금은 200원이었다. 현재 모두 6.3배 올랐다. 택시 기본요금은 600원이었는데 지금은 3000원으로 5배 상승했다. 한 집 건너 커피숍이 있는 요즘, 당시 다방커피가 한 잔에 558원이었는데 현재 커피값이 4100원(스타벅스 톨 사이즈 기준)이어서 7.3배 오른 셈이다. 쇠고기는 500g 기준 5080원이 4만5000원으로 올라 8.8배 증가했다. 선우 엄마는 택이 아빠에게 상금으로 은마아파트를 사라고 권유한다. 택이 아빠가 은마아파트를 샀다면 어떻게 됐을까? 1988년 5000만 원이었던 은마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76㎥ 기준 9억~10억 원으로 무려 1900배가 뛰었다. 택이 아빠는 선우 엄마의 말을 들었어야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는 결론이다.

A  “저 때만 해도 차가 많지 않아서 차 있으면 진짜 부자다.”
B  “자가용은 대단한 부의 상징이었다.”

현대자동차 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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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출시된 한국 최초의 국산 자동차 현대 ‘포니’

 1974년 제55회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되면서 세계 언론으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조랑말이라는 뜻의 포니는 당시 응모를 통해 5차례의 심사 결과 결정됐다는 후문이다. 1976년 판매될 당시 가격은 227만 원, 당시 월급이 5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복권 당첨으로 벼락부자가 된 정환이네 집에만 포니Ⅱ 차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니는 단종됐지만, 한국 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영상=전민선 인턴기자, 사진=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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