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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칼럼] 러시아와 터키, 왜 서로 으르렁거리나

중앙일보

입력

터키와 러시아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패턴이 반복됐다. 17세기 말부터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은 대략 50년에 한 번 전쟁을 치러 각각 한 번씩 승리했다. 전쟁 없는 평화시기에 두 나라는 마치 동맹국처럼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은 필자의 고향인 이디르를 포함해 터키 북동부 지역에서 큰 전쟁을 벌였다. 그런데 러시아 제정을 무너뜨린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 혁명 세력은 터키 혁명가 케말 파샤를 우호 세력으로 여기고 평화협정을 맺었다. 1920년 터키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소련 기술자들이 터키 산업화에 큰 기여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양국은 다시 한 번 사이가 나빠졌다. 소련은 전통적인 러시아 외교의 핵심 어젠더인 ‘남하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터키 동북부 지역을 탐냈다. 소련의 위협을 느낀 터키는 20년부터 유지한 중립외교를 버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했다. 53년 스탈린이 숨지면서 다시 호전됐고 터키는 최근까지도 나토 회원국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러시아와 친근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러시아와 터키 관계가 최근에 극도로 악화됐을까. 터키 공군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 사건도 있었지만 또 다른 원인도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터키는 중동 이슈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중동 문제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이전 정부와 크게 달라졌다. 에르도안 정권의 새로운 중동 외교는 러시아에 두 가지 측면에서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첫째, 유가 하락과 러시아 경제 악화 측면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천연 가스와 석유를 국제정치 무대에서 강력한 카드로 이용해왔다. 그런데 2006년부터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러시아가 큰 피해를 봤다. 그런데 수니파 테러 집단인 이슬람국가(IS)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터키 등에 석유를 몰래 팔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터키는 시리아 정권의 붕괴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도 IS와의 전쟁에는 소극적이다. 러시아로서는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둘째, 시리아 내전 이후의 중동 신질서 측면이다. IS가 무너지고 나서 시리아와 이라크는 각각 여러 국가로 분단될 가능성이 높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현 정권과 친밀한 러시아로서는 현재의 중동 세력 균형이 앞으로도 유지되길 바란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친터키 또는 친미 세력을 지원하고 있어 러시아가 발끈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르도안 정권 들어 터키가 전통적인 중동 외교에서 벗어났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푸틴은 터키 공화국이나 터키 국민을 비난하지 않고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의 가족을 비난한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터키와 러시아 문제는 에르도안과 푸틴의 갈등으로도 볼 수 있다.

터키와 러시아 양국 간에는 식품 등 교역이 활발하다. 러시아는 터키 남부에 원자력발전소도 짓고 있다. 양국 관계가 파탄 나면 양국 모두가 피해를 보는 구조다. 따라서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양국이 전면 충돌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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