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자선냄비 첫선 … 현금 대신 신용카드 결제 기부자판기까지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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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구세군 ‘스마트 자선냄비’ 부스에서 이윤서(27·오른쪽), 민국현(27·가운데)씨가 기부 대상을 고르고 있다. [강정현 기자]

구세군의 상징인 ‘자선냄비’가 스마트하게 업그레이드됐다.

각광받는 디지털 기부

 지난 2004년부터 구세군 측에 자선냄비를 지원해 온 휘슬러코리아가 올해 처음 ‘스마트 자선냄비’를 선보이면서다.

 지난 9일 오후 2시 시청 앞 서울광장 한편에 마련된 구세군 부스. 대형 리본이 달린 선물 상자 모양의 부스 안으로 장경선(49)씨와 딸 예희(11), 아들 예준(8)이가 들어왔다. 두 남매는 손에 1만원권 지폐를 쥐고 신기한 표정으로 ‘스마트 자선냄비’ 앞에 섰다. 냄비 위에 놓인 주사위 여섯 면엔 ‘노인·장애인’ ‘아동·청소년’ ‘해외·북한’ 등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대상들이 각각 적혀 있었다.

 고민하던 예준이가 먼저 ‘해외·북한’이 적힌 면이 위로 향하도록 주사위를 놓자, 스크린 화면에 ‘북한 지원’ ‘해외 아동 지원’ 아이콘이 떴다. 예준이는 북한 지원 아이콘을 터치하고 냄비에 지폐를 넣고는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요. 북한에 사는 친구들도 춥지 않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연말을 맞아 독특한 아이디어로 시민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스마트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고 있다. 단순히 모금함에 돈을 넣거나 인터넷 후원을 하던 건 구식이다. 터치 스크린이나 각종 스마트 장치 등을 이용해 재미있게 기부하는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구세군 스마트 자선냄비의 경우 기부자가 나눔 대상자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내장된 카메라로 기부 인증샷을 찍어 실시간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유할 수도 있다.

 현금뿐 아니라 신용카드를 이용한 기부도 가능하다.

 9일 서울광장 앞 구세군 부스에서 만난 김나현(28)씨와 송은재(29)씨도 기부를 신용카드로 했다. 올해 결혼한 김씨는 스크린을 터치해 ‘미혼모 지원’을, 송씨는 ‘아동·청소년 지원’을 선택했다. 김씨는 “내 돈이 어떤 이들에게 쓰일지 현장에서 직접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기부를 마치자 스크린에 카메라 화면이 나타났고 기념 촬영이 시작됐다. 두 사람은 ‘I am with you’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촬영했다. 곧바로 휴대전화로 전송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송씨는 “친구들도 인증샷을 보고 기부를 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노인·장애인 지원’을 선택한 휴학생 김용현(24)씨는 “올해로 86세가 되신 할머니가 기운을 잃은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노인들에게 매일 1000원씩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6시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앞엔 ‘디지털 자선 트리’가 형형색색의 LED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현대백화점이 ‘사랑의 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운영하는 ‘LED 기부트리’다. 트리 앞 작은 무대 위엔 1m 높이의 ‘기부봉’이 설치돼 있었다. 이 기부봉을 잡는 횟수만큼 현대백화점 측에서 자선단체에 연탄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쌍둥이 아들 찬영(4), 찬서(4)군과 함께 나온 양보윤(41)씨는 지폐를 꺼내 아들들에게 건넸고 이 돈은 모금함으로 직행했다. 양씨는 “일반적인 모금함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신기해 하는 아이들 손에 이끌려 기부를 하게 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3층에는 국제아동구호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설치한 기부자판기 ‘세이브더칠드런 선물가게’가 있다. 자판기 스크린 왼쪽 편엔 염소·구급약·신발·물 모양의 아이콘이 떠 있다. 원하는 기부 품목을 직접 선택하고 해당 금액을 결제하면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물품 구매용으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기부금은 염소 4000원, 구급약 2500원, 신발 1만원, 물 5000원이다.

 직장인 강민선(25)씨가 구급약 아이콘을 선택하자 화면엔 아파하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모습과 구급약 모양의 그림이 떴다. 신용카드로 기부를 완료하자 이번엔 구급약을 받고 건강해진 아이의 모습의 화면에 나왔다. 강씨는 “오늘 별생각 없이 왔다가 독특한 형태의 자판기에 끌려 기부를 했다”며 “내가 기부한 작은 돈이 아프리카에서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구호단체들은 스마트 기부 문화가 정착되면 모금액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구세군 박종덕 사령관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많은 70억원을 모금 목표로 정했다”며 “스마트 자선냄비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시민들의 기부 참여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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