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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을 연금으로 받는 법안…국회는 손놓고 정부는 핑퐁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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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8월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으로 퇴직연금 확대를 골자로 한 ‘사적 연금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중산층의 노후 대비를 돕기 위해서였다.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선 퇴직금을 한 번에 목돈으로 받는 대신 연금으로 나눠 받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중소기업 근로자에겐 연금 적립금의 10%를 정부가 사업주 대신 내주는 방안도 들어갔다. 임직원 수가 많은 대기업은 연금을 기금처럼 만들어 노사가 직접 운용할 수 있는 길도 터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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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대책은 제도 시행을 한 달도 안 남긴 지금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된 관련 법안(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1년 넘게 상임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상임위 최대 현안인 노동개혁 이슈에 밀려 여야의 관심권에서도 멀어진 상태다. 법안이 연내에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을 의무화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될 처지다.

 국회를 설득해야 할 정부도 손 놓고 있긴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는 “고용노동부 소관 법안”이라며, 고용부는 “기재부 주도 대책”이라며 서로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 국민 노후 대비의 핵심인 연금정책을 책임지고 추진할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책 발표 이후 기재부 차관보가 주재하는 ‘범(凡)부처 사적 연금 정책협의회’가 구성되기는 했다. 그러나 1년여간 두 차례 모여 회의를 연 게 활동의 전부로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그나마 연금의 주축인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관할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제동을 걸면서다.

 이런 부처 간 칸막이와 정치권의 방관에 국민 노후정책은 갈팡질팡하기 일쑤다. 연금저축 납입금을 연간 400만원까지 소득공제해 주던 걸 지난해부터 세액공제(12%)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과세표준 5000만원의 중산층 직장인의 경우 연말정산 때 돌려받는 세금이 최대 96만원에서 48만원으로 확 줄었다. 고령화 대비를 위해 20년간 연금저축을 육성해 오던 정책이 근시안적 세수 확보 욕심에 갑자기 역주행한 셈이다. 그 바람에 꾸준히 늘어나던 연금저축 가입자 수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산층의 노후 대비가 부실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면 정부에 더 큰 재정 부담을 지울 수 있다”며 “자녀 교육과 부모 부양 부담이 큰 가구는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조민근·박진석·강병철·염지현·이태경·김경진·정선언·이승호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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