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高麗 돌바둑판 소백산서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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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신선봉에서 석국(石局:돌바둑판)이 발견됐다. 충북 제천에서 바둑교실을 열고 있는 임창순 원장이 처음 찾아냈고 명지대 바둑학과 답사팀이 현장을 확인했다.

한국기원도 25일 답사팀을 파견했다. 지금까지 석국은 단양 사인암, 전남 강진의 월남사지, 충주 공이동 계곡, 전북 장수 덕산계곡(용소바둑판), 태안반도 백화산(암각바둑판)등에서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석국은 국내 일곱번째로 기록되는데 19줄 바둑판이 아닌 17줄 바둑판이어서 특히 눈길을 끌고 있다.

임창순씨는 옛 문헌인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석국의 단서를 찾았다. 중국 송나라 때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서긍이 저술한 이 책자에서 "신선봉에 가면 돌바둑판이 있다"는 글귀가 있는 것을 보고 오대산의 신선봉과 소백산의 신선봉을 뒤지기 시작한 것.

그는 결국 소백산 신선봉에 7차례 오른 끝에 인적이 잘 닿지 않는 외진 곳에서 풍우에 씻겨 선이 희미한 석국 하나를 발견했다.

답사팀을 이끌고 현장에 다녀온 명지대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는 "현재까지 국내의 돌바둑판은 심산유곡의 경치 좋은 곳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과거의 한국 바둑은 도가(道家)사상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바둑판은 가로.세로 19줄이 아닌 17줄이라서 바둑 연구가들을 골치 아프게 하고 있다. 현재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바둑판으로 꼽히는 '망도의 바둑판'(중국 후한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은 17줄이다.

바둑문화 연구가 안영이씨는 "고대의 바둑판은 17줄이었고 그것이 19줄로 발전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백제시대 바둑판이 이미 19줄이었으므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국이 17줄이란 점은 현장을 보기 전엔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바둑인들의 발걸음이 소백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석국에서 2줄이 풍화되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17줄이었는지는 곧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천년 전의 그 옛날 이곳 까마득한 산꼭대기에서 누가 바둑을 두었는지, 그 사람들의 심사는 어떠했는지 등은 풀리지 않는 궁금증으로 남을 것 같다.

한편 산악지도에는 백두대간의 길목인 소백산 신선봉 근처에 '바둑판 바위'라는 표시가 나온다.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이 돌바둑판이 오래 전부터 길잡이로 이용돼 왔음을 말해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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