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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버린 폐기물, 88년 이후에만 서울 남산 2배 규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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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호 7 면

1960년대 후반부터 50년 가까이 계속돼온 국내 폐기물 해양투기가 내년 초 전면 금지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이 유일하게 바다에 폐기물을 버려왔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동안 바다에 버리던 폐기물을 육지에서 처리해야 하고, 해양생태계에 남긴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10년 전인 2005년 11월. TV 앞에 있던 시민들은 경악했다. 이날 해양투기 문제를 다룬 KBS-TV ‘일요스페셜’은 포항 동쪽 125㎞, 폐기물 투기 해역인 동해병(丙) 해역에서 잡힌 붉은대게(홍게)에 머리카락과 돼지털이 붙어 있다는 내용을 방영했다. 이곳에서 잡힌 해양생물에서는 중금속과 발암물질도 검출됐다. 어민들은 “정부에서 오염 사실을 쉬쉬하라고 했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했다. 해양투기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2005년 한 해 국내 해양에 투기된 폐기물은 모두 992만9000t으로 15t 유조차 66만 대 분량이었다. 3곳의 투기해역(서해병·동해병·동해정) 중에서도 동해병 해역에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588만3000t이 버려졌다. 육지에서 나온 사람의 분뇨와 오니, 축산분뇨·오니, 하수오니, 음식물쓰레기 폐수는 물론 폐산·폐알칼리 등 산업폐수까지 포함됐다. 오니(汚泥, 슬러지)는 오·폐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생물과 오염물질이 섞인 물렁물렁한 덩어리를 말한다.


OECD 유일 해양 투기국 오명 벗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정창수 환경복원연구본부장은 “해양투기는 항구의 저장시설에 모인 폐기물을 3000~5000t 규모의 선박에 옮겨 싣고는 투기해역으로 나가 배출 밸브를 열고 10노트 정도의 속도로 달리며 바다에 버리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폐기물은 바닷물과 섞여 희석되기도 하고, 바닥에 가라앉아 쌓이기도 했다.


 국내에서 해양투기가 시작된 것은 60년대 후반이다. 초기에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소량씩 폐기물을 갖고 바다에 나가 버리는 식이었고, 규모도 연간 30만~50만t 정도였다. ‘해양오염방지법’이나 ‘폐기물관리법’이 있었지만 해양투기를 막기보다는 해양투기가 가능한 폐기물의 종류를 나열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88년 정부가 해양투기 해역을 지정하고,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해양투기가 본격화됐다. 폐기물은 주로 인천·군산·목포·여수·마산·부산·울산·포항 등지에서 배에 실렸다. 88년 55만2000t 이후 2005년까지 17년 사이 해양투기량은 18배로 계속 증가했다.

탱크로리에 실려온 폐기물이 항구에서 선박으로 옮겨지고 있다. [사진 환경운동연합]

 투기량이 급증한 것은 2003년 하수처리 오니의 매립을 금지한 것이 직접 원인이었다. 근본적으로는 96년 해양환경 관리 업무가 해양수산부로 이관되면서 육상과 해양 환경 관리가 이원화된 탓이었다. 육지의 악취와 침출수 문제를 바다로 떠넘겨 버린 것이다. 해양 전문가들은 “환경부가 육상과 해상 양쪽을 다 관리했다면 해양투기를 계속했겠느냐”고 비판했다. 육상에서 폐기물을 소각·매립하면 처리비용이 t당 6만~12만원이지만 바다에 버리면 비용이 3만~6만원으로 절반에 불과하다.


 해양투기로 인한 오염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정부도 2006년 3월 ‘육상폐기물 해양투기관리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해양투기량을 매년 100만t씩 줄여 나가고, 폐기물의 종류도 축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2006년부터 폐기물 투기량은 차츰 줄기 시작했다.


 정부는 ‘폐기물 등의 투기로 인한 해양오염 방지 협약’인 런던협약(72년)을 개정한 ‘1996년 의정서’에도 2009년 가입했으나 해양투기는 계속했다. ‘의정서’의 부속서에 오니 등의 투기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미국은 92년, 영국은 99년, 일본은 2007년에 오니 투기를 중단했다.


 폐기물이 지속적으로 줄던 2012년 말 정부는 “해양투기를 2014년부터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투기하던 폐기물을 전량 육상에서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2013년 당초 계획을 바꿔 해양투기를 일부 허용했고, 전면금지 조치는 2016년 초로 2년 연기됐다. 환경단체의 반발도 잇따랐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최예용 부위원장은 “하수오니 투기는 금지시켜 놓고서는 오히려 독성이 강한 산업폐수 투기를 계속 허용한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기해역 면적이 서울 13배에 해당할 정도로 넓었지만 워낙 많은 양의 폐기물을 지속적으로 투기하다 보니 오염 문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하대 최중기(해양학) 명예교수는 “해양투기로 인해 퇴적토에서 중금속이 높게 검출되고 서해에서는 적조까지 발생하는 등 생태계에 영향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창수 본부장은 “88년 이후 해양투기된 폐기물 1억3000만t을 한 곳에 쌓아놓으면 서울 남산 크기의 두 배와 비슷하다”며 “폐기물을 실은 선박들은 시간과 연료 절약을 위해 투기해역 경계 내로 들어서자마자 버리는 경우가 많아 육지에 가까운 곳은 오염이 더 심했다”고 말했다. 한 척이 버리고 떠나면 곧바로 다른 배가 이어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해역 퇴적물에서는 중금속 등 오염물질 농도가 ‘주의 기준’을 초과해 정부에서 ‘휴식년 구역’으로 지정해 투기를 금지하기도 했다. 또 동해병 해역에 대해서는 2007년 붉은대게 조업금지 조치도 취했다. 이곳은 연간 81억원어치의 붉은대게가 잡히던 곳이었다.


폐기물 육상 처리 능력 충분히 확보 내년 해양투기 전면 금지를 앞두고 업계는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 서해에 투기를 하던 H사 관계자는 “가을부터는 폐기물을 실은 배가 더 이상 출항하지 않고 직원들도 대부분 떠났다”며 “부두에 있던 폐기물 저장시설도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해 쪽 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환경부 폐자원관리과 배문건 사무관은 “몇 해 전부터 점차 줄여 왔고 육상 폐기물 처리 시설의 용량도 충분해 별문제는 없다”며 “영세한 식품제조업체나 폐지 재활용업체 등을 위해 폐수 공동수거 제도를 도입하고 시설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내년에 해양투기가 금지된 후에도 이 해역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계속할 계획”이라며 “퇴적물 오염이 심한 동해병의 일부 구역은 깨끗한 준설토로 덮어 복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심이 너무 깊어 오염 퇴적토를 준설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붉은대게 조업 재개 여부는 환경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어민과 환경단체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상대적으로 오염도가 낮은 구역부터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중기 교수는 “해양투기는 수산업에도 큰 영향을 준 만큼 진작 사라졌어야 했다”며 “이제야 한국도 해양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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