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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IS 동맹’ 균열 … 나토·러시아 충돌 가능성 배제 못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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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7 면

터키인들이 27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암살자 푸틴’이라는 문구가 쓰인 사진을 들고 반러시아 시위를 벌이고 있다. 터키가 지난 24일 자국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수호이(Su)-24 전폭기를 격추한 이후 터키와 러시아 사이에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AP=뉴시스]

이슬람국가(IS)의 프랑스 파리 테러로 130명이 사망한 이후 중동을 둘러싼 지정학이 더욱 꼬이고 있다. 프랑스는 즉각 IS를 “무자비하게 박멸하겠다”며 전쟁을 선포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군사적으로는 항공모함 샤를 드골을 지중해 동부로 이동시켜 IS 폭격에 나섰다. 이번 주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국제사회의 주요 지도자를 만나 ‘반IS 동맹’을 규합하는 외교를 펼쳤다.


중동 지역은 테러 여파로 벌집을 쑤셔 놓은 모습이다. 시리아 상공에선 미국·러시아·프랑스의 폭격기들이 집중적인 공격에 나섰다. 지난 24일(현지시간)에는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 부근에서 러시아 전폭기를 터키 전투기가 격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직접 충돌한 것은 처음이다. 푸틴은 터키가 등에 칼을 꽂았다고 비난했고, 터키는 러시아의 노골적인 영공 침입에 대한 당연한 대응이라고 반박했다. 나토는 공식적으로 터키의 입장을 지지했다.


21세기 ‘차르’라 불리는 푸틴과 ‘술탄’ 에르도안은 자존심이 강한 지도자들이라서 서로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러시아는 아직은 교역과 관광 제한 등 비교적 소프트한 수단으로 터키를 압박하고 있지만 양국 간 군사적 재충돌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두 나라를 넘어 러시아와 나토가 직접 맞부닥치는 신냉전 또는 열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러시아에서는 실제로 이번 사태를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계기가 된 1914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과 비교하기도 한다.


현재 중동의 분쟁은 세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내전 중인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내 정치다. 이라크는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그리고 시리아는 2011년 ‘아랍의 봄’과 함께 내전이 시작됐다. 이라크와 시리아는 모두 이슬람의 시아파가 권력을 독점하는 통치세력이다. 따라서 반정부세력은 수니파가 주도한다. IS는 수니파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세력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양국에 걸쳐 지난해부터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적 구분에 덧붙여 수니파 내에도 극단과 온건의 정치적 분열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다 이란·이라크·시리아·터키에 분산된 쿠르드족이 있다. 쿠르드는 하나의 민족으로 자치권이나 독립국가 형성을 꿈꾸며 싸우는 세력이다. 결국 시아파 정부, 수니파 온건세력, 수니파 극단세력(IS), 쿠르드 등 네 분파가 내전으로 얽혀 싸우는 형국이다.


서구 세력의 입장도 나라마다 서로 달라분쟁의 다른 한 차원은 중동의 지역정치다. 이란은 중동 시아파의 ‘맏형’으로 이라크와 시리아의 시아파 정부를 지지한다. 이란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도 활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요르단·카타르 등은 기본적으로 이라크와 시리아의 수니파 세력을 지원한다. 사우디와 터키가 IS를 비밀리에 지원하거나 적어도 적극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고 의심받는 이유다. 또 터키는 자국의 쿠르드족과 결합할 수 있는 이라크 및 시리아의 쿠르드 세력에 적대적이다.


세 번째는 국제정치 차원이다. 서방 국가의 주적(主敵)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테러를 일삼고 있는 IS다. 프랑스는 IS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이제 적극 개입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지역 구도에서 봤듯이 사우디와 터키의 우선 목표는 IS 박멸이 아니다. 또 러시아는 중동 지역의 유일한 동맹국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보호가 목표다. 지중해 군항을 사용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 한다. 러시아는 겉으로 IS를 공격한다면서 사실은 수니파 온건세력을 폭격해 왔다. 시리아의 동북부에서 쿠르드와 IS가 주로 전투를 벌이지만 남서부에선 정부군과 수니파 온건세력이 싸우기 때문이다. 서방 세력은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한 알아사드를 축출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러시아와 대립한다.


서방 세력의 입장도 일관된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테러 공격을 당한 이후 알아사드에 대한 퇴진 요구는 미루고 러시아와 협력해 IS 제거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프랑스의 적극적인 행보에 가장 신속하게 화답한 것은 영국의 캐머런 총리다. 이라크에서만 IS를 폭격했던 영국은 그 범위를 시리아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프랑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중동 공격 동참에는 난색을 표했다.


국제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행위자는 역시 미국이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2001년 알카에다의 9·11 테러 이후 10년 넘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에서 쓴맛을 본 미국은 웬만해서 중동 분쟁에 적극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워싱턴으로 찾아간 올랑드에게 오바마는 심심한 조의를 표하면서 폭격 강화, 적극적 군사정보 교환과 반테러 정책 경험 공유 등을 약속하는 데 그쳤다. 오바마는 푸틴과의 협력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본토가 공격당하지 않는 이상 오바마의 소극적 중동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소외와 국가의 실패 극복해야현지 소식통은 IS가 이미 지하에 터널을 만들고 무기와 식량을 비축한 채 장기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한다. 유럽의 심장을 강타한 테러로 자신들에 대한 반격이 강화될 것에 대비한 것이다.


이들은 인구 25만 명의 도시 라카를 지하드(聖戰)의 수도로 삼고 민간인을 방패로 활용해 서구에 대항할 태세다. 이미 IS에는 약 3만 명의 외국인 전사가 참여하고 있다. IS는 외세의 폭격이 심해질수록 민심은 IS로 돌아설 것이고 서구에서 더 많은 전사가 몰려올 것이라 계산하고 있다.


영토와 자원을 확보한 IS는 손쉽게 박멸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비참하게 공격당한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했지만 외교와 군사력을 동원해도 신속하게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은 아니다. 매우 복합적인 국내와 지역, 그리고 국제정치의 방정식을 풀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를 양산하는 사회적 소외현상과 테러조직에 성역을 제공하는 국가 실패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라크와 시리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새로운 얼굴의 극단주의가 부상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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