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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정당 폐해 줄일 수 있는 개방적 유권자 등록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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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28면

1 1954년 11월 29일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이 통과된 직후의 국회 모습.

정치와 선거는 수(數) 싸움일 때가 많다. 지금으로부터 꼭 61년 전인 1954년 11월 29일 사람 수는 분수나 소수로 나타낼 수 없고 따라서 사사오입(반올림)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미 부결된 헌법개정안을 새로운 헌법으로 공포·발효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이다.


애초의 헌법개정안 표결에서는 재적의원 203인 가운데 135인만 찬성하여 국회 부의장이 부결을 선포했다. 이틀 후 개헌 추진세력은 개헌 의결정족수인 재적 3분의 2가 135.33… 대신 반올림한 135라고 우기면서 부결 선포를 번복하고 개헌안을 통과시켜 버렸다.


개헌 추진세력은 의결정족수의 반올림 계산이 규칙을 어기지 않은 기발한 한 수로 생각했거나, 아니면 변혁을 위해서는 규칙 위반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뭐라고 생각했든 135는 135.33…보다 작기 때문에 사사오입 개헌은 헌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사사오입 개헌은 세상을 바꾸긴 했어도 수학의 부등식 원리에 위배된 곡학아세(曲學阿世)였다.

2 지난 16일 국회에서여야 원내 수석부대표가 선거구획정기준을 20일까지 제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여야는 약속한 기한에 합의하지 않았다. [중앙포토]

소선구제론 완전한 표 등가성 불가능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수리계량적 연구방법이 발달해 있다. 합법적인 정치공학과 규범적 목적을 위해서 규칙의 수치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집단의 결정으로 채택되려면 객관적인 기준과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엄격한 객관성을 위해 숫자와 등식이 종종 사용된다.


그런 산술적 계산의 예는 비례대표성이다. 권력이 민의의 크기에 비례하여 부여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을 실천하기 위한 계산이다. 정당의 득표율 그대로 정당에 의석을 배분하자는 것이 비례대표제의 취지다. 비례대표성은 정당 간의 표 등가성뿐 아니라 선거구 간의 표 등가성도 강조한다. 그런데 소선거구제에서 완전한 표 등가성은 불가능하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선거구획정 최대허용 인구편차로 결정한 2 대 1 기준은 산술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편차에 근거한 것이다.


사실 현행 선거구처럼 여러 행정구역을 결합할 수 있을 때에는 개별 선거구간 인구 편차를 2 대 1보다 훨씬 더 낮게 조정할 수 있다. 실제 선진 민주국가들 대부분은 인구편차가 높아봤자 1.5 대 1 이하다. 또 선거구간 2 대 1 인구편차 기준에서도 여러 선거구를 집계한 광역지역(시·도) 간 편차는 2 대 1보다 훨씬 낮게, 거의 1 대 1에 근접한 편차로 획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행 선거구는 광역지역간에도 작지 않은 편차를 보이고 있다.


현행 선거구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2015년 말까지만 유효함에도 불구하고 2016년 국회의원선거를 4개월 반만 남겨놓은 현재, 아직도 선거구획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엄격한 산술적 계산이 부족하고 동시에 요구되지도 않고 있다.


선거구획정을 둘러싼 이견 가운데 하나는 비례대표의석 수를 줄일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비례대표의석 축소 여부는 정파별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데 그럴수록 규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혹자는 정당표에 의해 정당의 전체 의석비가 결정되어야 올바른 비례대표성이라고 믿는다. 정당표의 득표율 그대로가 아니더라도 절반 정도가 전체 의석비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당표 득표율을 갖고 전체 의석비를 결정하는 방안은 유권자들이 비례대표의석의 표 가치를 지역구의석 표보다 훨씬 높게 받아들여야만 도입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헌 소지가 있다.


현행 선거제도에서 정당을 선택하는 표의 가치는 지역구후보를 선택하는 표보다 훨씬 작다. 예컨대 지역구의석과 비례대표의석이 각각 250석과 50석이라고 가정하면, 전체 유권자의 평균 1/250에 해당하는 수의 유권자가 지역구 의원 1인을 선출하는 반면에, 비례대표 의원 50인은 전체 유권자가 선출하게 된다. 즉 지역구의석 표와 비례대표의석 표 간의 가치는 5 대 1인 것이다. 만일 지역구표와 정당표의 가치 차이를 이와 다르게 인식하고 투표하는 유권자가 많다면 현행 1인2표제는 유권자의 의중을 잘못 대표하는 방식이다.


지역구에서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가 정당표에 의해 비례대표의석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 석패율제 또한 유권자가 표의 가치를 그렇게 인식하지 않고 투표한다면 마찬가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1개 표로 지역구의석과 비례대표의석을 선출한 방식이 위헌이라고 2001년에 결정한 헌법재판소로서는 2개의 표로 1인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위헌으로 결정할 소지가 크다.

지난 11일 농어촌주권지키기의원모임 소속 의원들이 여야 지도부에 지역구 현상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0.5표짜리 의원제 도입도 검토할 만 선거구획정과 둘러싼 이견 가운데 다른 하나는 인구편차를 2 대 1 이하로 맞추기 위해 농어촌 지역구의석을 줄일 수밖에 없느냐는 점이다. 만일 특정 지역이 대표는 되어야 하는데 선거구 인구가 부족하다면 0.5표짜리 국회의원직을 만드는 방안이 있다. 해당 국회의원은 의결에 참여해서 1표 대신 0.5표로 행사하는 방식이다. 재적 과반수 출석과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49조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가 있기 때문에 법률 규정으로도 0.5표짜리 국회의원은 가능하다. 헌법이 규정하는 의안에 대해서는 0.5표짜리 국회의원도 1표를 행사하면 된다.


선거구획정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구 계산 기준이다. 현행 선거구획정은 미성년자까지 포함한 인구 수를 기준으로 한다. 지역에 따라 거주 연령대 분포가 다르기 때문에 인구 수가 유권자 수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게다가 정치적 입장이 세대별로 다르기 때문에 지역 유권자의 투표선택이 해당 지역 전체 인구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인구 수보다 유권자 수가 비례대표성 계산에 더 적절한 기준이다.


사람뿐 아니라 지역과 면적, 그리고 주민등록 인구뿐 아니라 군장병과 같은 실제 거주자도 선거구획정 기준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인구비례성 외의 다른 가치 기준을 제기할 수 있어도 비례대표성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비례대표성에 벗어나면 평등선거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지지율=권력지분’이라는 비례대표성이 간단하게 실천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지지율≠득표율≠의석비≠권력지분’이다. 지지율이 득표율에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는 이유는 많은 유권자들이 사표방지 심리로 전략적으로 투표하기 때문이다. 득표율이 의석비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1등만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때문이다. 또 의석비가 권력지분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대통령제와 같은 다수제 의사결정방식 때문이다. 설사 인구 10%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의석 10%를 받는다 하더라도 실제 영향력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여러 민주국가에서는 인구비례로 대표되지 않는 지역대표성을 양원제로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10%에게 10%보다 더 큰 영향력을 제공하는, 즉 다수에 대한 역차별은 그 취지가 아님은 물론이다.


후보 이름도 모르는 현행 제도는 문제양원제 등의 지역대표성 제도는 헌법 개정이라는 절차뿐 아니라 국회 교착 가능성 때문에 반대 의견도 있을 것이다. 현행 단원제 하에서 인구대표성과 지역대표성을 동시에 해결하려면, 지역 특수성이 인정되나 인구가 부족한 지역으로의 유권자 유입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고향투표제도 그런 예이다. 물론 주민등록제, 학군 및 입시제도 등 여러 제도를 함께 보완해야 한다.


이런 개방적 유권자등록제는 지역할거 정당체제를 완화한다. 특정 정당이 지배하는 지역구에 전국의 지지자들이 등록하여 다른 정당 후보의 당선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현행처럼 이름도 모르는 자기 주소지 국회의원보다는 그간 활동을 주시해온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대표성에 있어서 더 바람직하다. 국회의원은 지역 대표보다 국민 대표라는 맥락에서다. 더구나 세금 일부를 선거구민으로 등록한 지역에 납부하도록 만든다면 개방적 등록제는 지방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국회의원선거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획정안을 선거 6개월 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선거 5개월 전에 확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획정위와 국회는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한 이 시한들을 이미 어겼다.


얼마 전 여야의 대표들은 선거구획정을 특정일까지 최종 결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것뿐이었고 합의 시한에 조급해 하는 모습은 없었다. 애초 선거구획정 합의가 쉽게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뤄진 대(對)국민 면피용 발표에 불과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 120일 전인 12월 15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을 규정하여 현역 의원이 아닌 예비후보자들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으면 예비후보 등록 자체가 되지 않는다. 여야는 이 기일도 넘길 분위기다.


유권자의 선거구 등록을 개방적으로 조정한 후 선거구별 유권자 수에 비례한 선거구를 획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비후보자 관련 조항을 개정해서 신진 정치인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공정성에 부합한다. 이런 공정성 기준을 당장 적용하기 어렵다면 한국 정치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여론조사에 의한 결정방식을 통해서라도 선거구획정을 바로 결정하는 것이 불공정성을 줄이는 길이다.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부시가 앨 고어에게 득표율에서 졌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이겨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제도변경이나 선거전략에 대한 논의는 있었어도 선거결과 불복 사태는 없었다. 그런 유사한 선거결과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다면 정치적 소요사태가 없으리라 장담하지 못한다. 게임규칙에 대한 합의는 민주주의에 매우 필요하다. 엄격한 논리에 근거한 합리적인 규칙이 대한민국에도 자리 잡았으면 한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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