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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결혼 미끼로 여성들 농락한 희대의 카사노바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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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을 빙자한 간음, 한때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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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1
 '형법 제 304조.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953년 9월 18일 제정된 혼인빙자간음죄는 결혼을 미끼로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을 처벌하는 법.
사진설명: 2009년 9월 10일 혼인빙자간음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추가#
가정이 있는 남녀의 불륜에 대해 남녀를 모두 처벌한 간통죄와 별개의 형벌이었다. 59년간 유지됐던 혼인빙자간음죄는 2009년 위헌 판결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
 혼인빙자간음죄는 1955년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댄스홀에서 만난 70여 명의 미혼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박인수(당시 26세)씨. "내가 관계한 여성 가운데 처녀는 단 한 명이었다. 춤을 춘 후 여관으로 가는 건 상식화된 일"이라고 폭로
사진설명: 70여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체포된 박인수 사건 공판장

#3
1심 법원은 "댄스홀에서 만나 관계를 맺은 것은 여자 자신이 택한 향락의 길.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며 무죄 선고. 그러나 항소심에선 박씨에게 유죄 판결,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됐지만 파문은 오래갔다

#4
 "순진하고 나약한 부녀자들만을 골라 결혼을 앞세워 몸을 버리게 하는 일은 엄벌해야."
 1970~80년대엔 혼인빙자간음을 강간같은 중범죄로 여겼다. 1975년 8월 19일, 검찰은 혼인을 빙자해 과부와 처녀를 농락하고 금품을 뜯어낸 최모(44)씨와 이모(32)씨에게 상습 혼인빙자간음과 사기죄를 적용해 각각 징역 15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5
 1972년 4월 26일, 나이트클럽에 찾아가 사귀던 클럽 웨이터 김모(32)씨 얼굴에 초산을 뿌려 전치 8주의 중화상을 입힌 접대부 정모(24·여)씨. 정씨는 미혼인 줄 알았던 김씨가 유부남인 것을 알고는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 20만원의 위자료를 받았다. 문제는 그후에 더 커졌다. 김씨의 발설로 클럽에서 해고 당했던 정모씨는 앙심을 품어 초산 테러를 저지른 것
사진설명: 붐비는 나이트클럽 혹은 호텔 나이트클럽(내용과 무관한 이미지)

#6
 이모(28)씨는 1983년 6월 13일 병원 앞에서 주운 인턴수료증에 자기의 사진을 붙였다. 자신을 의사로 사칭하고 여성 11명에게 결혼하자고 속여 총 989만원을 사취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씨에게 농락당한 여자 중 한 명은 아파트 12층에서 투신해 숨지기도

#7
 1982년 12월 29일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구속된 김모(26)씨. 김씨는 조모(27)씨와 결혼을 약속하고 성관계를 가진 뒤 청첩장까지 돌렸지만 결혼식 당일 예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조씨는 김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김씨는 "조양이 처녀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혼할 마음이 없어졌다"고 진술
사진설명: 하객들로 붐비는 결혼식장 주변 피로연장

#8
 출세후 옛 애인을 버린 의사나 검사 등이 고소되는 일도 많았다. 1984년 7월 24일 혼인빙자간음과 사기죄로 구속된 정형외과 의사 조모(30)씨도 그런 경우. 조씨는 군의관 시절 머물던 하숙집 주인의 딸 최씨(25)를 꾀어냈으나 제대 직후 돌변. 갓난 아들과 찾아와 결혼을 요구한 최씨에게 '의사와 결혼하려면 1억원을 가져와야 한다'며 거절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고
사진설명: 1976년 5월 24일 여인숙, 여관, 하숙집 등 역전 주변 스케치

#9
 1991년 9월 27일, 마산 고려병원 외과과장 최모(32)씨는 전남의 한 여관에서 임신 9개월인 애인(32)에게 다른 여자와 결혼하겠다며 헤어질 것을 요구했으나 애인이 이를 거절하자 낙태를 노리고 수건에 적신 마취제(할로탄훼스트)로 실신시켰다. 전남 구례경찰서는 최씨에 대해 상해 및 혼인빙자간음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진설명: 여관 내부 모습

#10
 1990년대 이후엔 유명인들의 이름까지 혼인빙자간음으로 자주 등장. 진실과는 관계없이 당사자가 명예를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2000년 들어 바뀐 세태. 혼인빙자간음죄로 인한 재판 건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1981년 한 해 269명이던 기소 건수는 2007~2009년 99건에 그쳤고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도 약 30명에 불과.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시간이 지나며 달라졌다.

#11
 1997년 2월, 2년간 사귄 이혼녀에게 "처와 이혼할테니 곧 결혼하자"고 속이고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된 이씨가 2002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시 헌재는 "남성의 계획적으로 접근해 결혼을 무기로 성을 편취한 것은 사생활 영역의 자유로운 성적 결정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형벌권이 개입할 부분"이라며 합헌 결정.

#12
 그러나 7년 만에 이 결정은 뒤집혔다. 2009년 11월 26일, 헌법재판소는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남성이 결혼을 약속했다고 하여 성관계를 맺은 여성의 착오를 국가가 형벌로써 보호한다는 것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스스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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