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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머니보다 강했다, 김인식의 ‘휴먼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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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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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가 달린 모자를 쓰고 야구대표팀을 지휘한 김인식 감독.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여 팀을 하나로 만드는 휴먼볼로 프리미어 12 초대 우승을 이끌었다. [뉴시스]

“그럼 어떡해? 그쪽도 사정이 있다는데.”

도쿄대첩 영웅 김인식 감독 인터뷰
남 탓 않고 상대방 입장 먼저 배려
사람 마음 움직여 팀 하나로 만들어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 12에서 한국팀의 우승을 이끈 김인식(68) 대표팀 감독은 지금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다. 지난 22일 귀국하자마자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매일 밤늦게까지 약속이 잡혀 있다. 남의 부탁을 좀처럼 거절할 줄 몰라서다. 그래서 김 감독이 즐겨하는 말이 “그럼 어떡해?”다.

 김인식 감독은 일이 꼬여도 남을 탓하지 않는다. 엉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가는 리더가 김인식이다. 자신이 불편해도 상대 입장을 먼저 배려한다. 그의 야구를 휴먼볼(human ball·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팀을 하나로 만드는 야구)이라 부르는 이유다.

 한국 대표팀의 우승으로 끝난 프리미어 12는 김 감독의 리더십을 압축해서 볼 수 있는 대회였다. 한국은 예선 첫 경기에서 일본에 0- 5로 완패했지만 준결승에서 일본과 다시 만나 4- 3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에서는 미국을 8- 0으로 대파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은 한·일전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기억될 만 하다. 이번 대표팀에는 박찬호(42·은퇴) 같은 투수도, 이승엽(39·삼성) 같은 타자도 없었지만 한국은 선수 모두가 똘똘 뭉쳐 일본을 무너뜨렸다. 26일 오후 김인식 감독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 우승의 여운이 아직 가시질 않는데.

 “허허. 내가 뭘 했다고. 선수들이 정말 잘해줬어. 고마울 따름이야. 대표팀 소집부터 대회가 끝날 때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팀 분위기가 좋더라고. 팀워크가 단단했던 거 같아요.”

 - 4강 진출도 어렵다는 사람이 많았는데요.

 “나도 걱정이 많았지. 타선은 괜찮다고 봤지만 마운드가 문제였거든. 그런데 투수들도 잘 던지더라고. 자기 능력의 100% 이상을 발휘한 선수들도 있었어. (차우찬과 장원준을 일컫는 것이냐고 하자) 그렇지, 둘이 정말 잘했어. 객관적 전력은 일본이 강하다고 해도 단판승부는 해볼 만 하다고 느꼈지. 그게 대한민국의 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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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와의 예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뒤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는 김인식 감독. [뉴시스]

 프리미어 12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과 일본야구기구(NPB)가 메이저리그 중심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대회다. 한국 선수들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없었다. 오승환(33·일본 한신)·윤석민(27)·양현종(27·이상 KIA) 등이 부상을 이유로 빠졌다. 게다가 대회 직전 도박 파문에 연루된 투수 3명도 대표팀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김 감독은 “마운드가 크게 흔들렸다. 처음 구성했던 명단을 지우고 10명 정도의 투수를 새로 뽑아야 했다”고 말했다.

 출발부터 삐걱거렸던 대표팀은 개막전에서 일본의 괴물투수 오타니 쇼헤이(21·니혼햄)의 강속구에 철저히 눌렸다. 한국 타선은 6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당하고 2안타·무득점에 그쳤다. 준결승에서 오타니를 다시 만났지만 7이닝 1안타·무득점으로 막혔다. 그러나 한국은 0-3으로 뒤진 9회 대타 오재원(30·두산)·손아섭(27·롯데)의 연속 안타로 추격을 시작했다. 이어 정근우(33·한화)의 적시 2루타로 1점을 얻었고, 이용규(30·한화)의 몸맞는공과 김현수(27·두산)의 밀어내기 볼넷, 그리고 이대호(33·일본 소프트뱅크)의 역전 2타점 적시타가 터졌다.

 - 두 번째 대결에서도 오타니에게 밀렸는데요.

 “투구수가 늘어나면 오타니의 구위가 떨어질 거라 기대했어. 7회에 공이 높긴 했지만 스피드는 그대로더라고. 그래도 반드시 한 번의 기회는 오거든. 그걸 기다렸지.”

 - 투수들은 빨리 투입하고, 대타들은 아껴 두셨습니다. 8·9회 반격을 노리신 건가요.

 “그렇지. 일단 0-3에서 실점을 더 하면 안 된다고 봤어. 투수들이 잘 버텨줬지. 오타니가 내려가고 노리모토 다카히로(25·라쿠텐)가 나오면서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어. 노리모토도 150㎞ 넘는 공을 던졌지만 오타니를 상대한 뒤여서 타자들이 잘 쳐내더라고.”

 - 사실 ‘져도 된다’고 생각하셨죠? ‘많이 져봐야 다음에 이긴다’고 늘 말씀하시잖아요.

 “(1990년 창단한 쌍방울 지휘봉을 잡은 뒤) 감독으로서 400승과 400패를 해본 뒤에야 야구가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 지면 거기서 배우고 빨리 잊으면 돼. 첫 일본전에서 진 뒤에 선수들에게 한마디만 했지. ‘빨리 잊으라’고.”

 우승 축하연에서 김 감독은 머리를 깊이 숙였다. 대표팀 선수 28명과 코치 6명, 그밖에 지원 스태프 모두를 향해 감사와 존경을 전한 것이다. 대표팀에 처음 합류한 이대은(26·일본 지바롯데)은 노장(老將)의 모습을 보고 “정말 가슴 찡한 장면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감독은 두산 사령탑이었던 2001년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시즌 중 연패에 빠지자 선수들이 축 처진 상태였다. 그는 이렇게 소리쳤다. “오늘만 야구 할 거야? 내일 또 져도 돼. 언젠간 이기겠지.” 그해 두산은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두산엔 특급 선수들이 없었지만 선수들의 기세가 대단했다. 김 감독의 야구는 장타 위주의 롱볼(longball)도, 작전 중심의 스몰볼(smallball)도 아니다. 각자의 마음을 움직여서 최대한의 힘을 만들어내는, 따뜻해서 강한 휴먼볼이다. 그가 2006년 WBC 4강, 2009년 WBC 준우승을 이끈 원동력이다.

 -‘사무라이 재팬(일본 대표팀의 별칭)’이 부러우셨겠어요.

 “2009년 WBC 때 일본이 사무라이 재팬을 만들었지. 우린 아무런 준비가 안 됐을 때야. 그때 내가 그랬잖아? ‘일단 사무라이의 검을 삼지창으로 막는다’고. 일본 대표팀은 이제 단단한 체계를 갖췄더라고. 우리는 아직 그대로야.”

 사무라이 재팬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됐다. 지난 1월 고쿠보 히로키(44)를 대표팀 전임(專任) 감독으로 임명해 2017년 WBC를 대비하고 있다. 프리미어 12는 주최국 일본의 욕심 탓에 경기 일정이 멋대로 바뀌는 등 대회운영에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을 꺾고 그들이 깔아놓은 비단길을 밟은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한·일전 승리는 그래서 더 통쾌했다. 많은 팬들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세리머니를 기대했으나 한국 대표팀은 과도한 액션을 자제했다. 김 감독은 “이겼는데 상대를 자극할 필요 없잖아. 주장 정근우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라며 웃었다. 멋진 야구로 이겼고, 끝까지 상대를 배려한 한국 야구 대표팀은 ‘챔피언의 품격’을 보여줬다.

 - 감독님 덕분에 올 시즌 마지막 야구 경기가 멋지게 끝났습니다.

 “허허.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워. 바쁜 일 끝나면 좀 쉬고 싶어. 그 때 커피 한 잔 하자고.”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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