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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제대로 안 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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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경기가 급속히 나빠지면서 시중에 돈이 잘 돌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이나 기업이 저금리 때문에 금융회사에 돈을 잘 맡기지 않으면서 금융회사가 빌려주는 돈의 규모도 크게 줄어드는 등 자금 중개 기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1분기 자금순환 동향'에 따르면 국내 금융자산 증가액은 48조원으로 전분기(1백13조7천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분기별 규모로는 2000년 4분기(43조5천억원) 이후 가장 적은 것이다.

금융자산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한 것은 돈이 활발하게 돌지 못하고 부동산 시장에 잠겨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 부동산뱅크는 전국의 아파트 가격을 모두 합친 규모가 지난해 말 7백11조원에서 현재 7백80조원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가 개인.정부에 빌려준 돈도 크게 줄었다. 1분기에 금융회사의 대출금은 29조6천억원으로 전분기(34조2천억원)보다 5조원 가량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47조7천억원)에 비해선 18조원이나 줄어든 규모다. 특히 신용카드사 등 제2금융권의 기능이 크게 위축했다. 제2금융권의 대출금은 3조6천억원에 그쳐 전분기(10조6천억원)에 비해 7조원 줄었다. 은행 대출금은 25조6천억원으로 전분기보다 5조원 가량 증가했다.

개인들이 예금을 하거나 주식.채권 등을 사들인 금액도 크게 줄었다. 경기침체로 소득이 줄고 저금리로 저축 의욕이 꺾였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금융권에 맡긴 돈은 10조7천억원으로 1998년 3분기(8조9천억원) 이후 4년반 만에 가장 적었다. 지난해 4분기(32조4천억원)에 비해선 20조원 이상 급감한 규모다.

개인들은 은행과 제2금융권에 각각 5조원을 맡겼으며 증시에서는 4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의 영향으로 개인들이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도 전분기(24조1천억원)보다 18조5천억원 줄어든 5조6천억원에 그쳤다. 개인들의 금융자산은 지난 3월 말 현재 총 9백60조원으로 금융부채(4백62조원)의 두배였다.

반면 기업들은 경기침체로 돈을 잘 벌지 못하자 빚을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여전히 부진하지만 중소기업의 운전자금 대출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이 금융회사나 외국에서 빌린 돈은 34조2천억원으로 전분기보다 12조원 증가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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