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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8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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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발인이 있기까지 이틀을 더 기다리는 동안 하구는 무대의 동생 무송이 이때 돌아와버리면 어쩌나 조마조마하기 그지없었다. 무송이 돌아와서 형님 시신을 보면 독살당한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었다. 이미 입관이 되어 있어도 무송의 성격으로 보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였다.

이런 불안은 금련과 서문경, 왕노파도 다 같이 가지고 있었다. 무송과 비슷하게 생긴 남자가 빈소에 들어서기만 해도 깜짝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는 동안 무송은 여전히 멀리 있는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사흘째 되는 날 오경(새벽 3시에서 5시)에 장례를 돕는 일꾼들이 무대의 관을 메고 나가고 금련과 영아, 그리고 왕노파와 동네 사람 몇이 그 뒤를 따랐다. 해가 뜨기도 전에 발인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얼마 나오지 못하여 장례 행렬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빼어난 미인을 아내로 둔 죄로 무대는 그만 억울하게 세상을 일찍 뜨고 말았다. 금련을 아내로 얻을 때도 상전인 장대호가 금련을 가지고 노는 데 편리하도록 무대에게 일단 맡겨놓았던 것이 아닌가.

이래저래 이용만 당하고 독살까지 당하였으니 무대에게 영혼이 있다면 황천길로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구천을 한없이 헤매며 떠돌 것이었다.

하얀 상복을 입고 가마를 타고 가는 동안 금련은 내내 소리내어 울었다. 우는 척했다기보다 정말 마음이 우울해지고 슬퍼서 곡을 하였다. 이렇게라도 곡을 하지 않으면 무대가 원귀가 되어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만 같았다.

성 밖 화장터에 도착하니 이미 마른 장작들이 쌓여 있었다. 관을 그 위에 놓고 불을 지피자 불길이 기다렸다는 듯이 장작과 관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금련과 왕노파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제는 무송이 돌아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화장을 하기 직전까지도 무송이 말을 타고 달려오며 화장을 당장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면 어쩌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길이 가라앉자 사람들은 장작 재 속에서 무대의 뼈들을 추려내어 가루로 만들어 금련과 영아에게 가져다주었다. 금련은 영아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무대의 뼛가루를 근처 연못에 뿌려주었다. 뼛가루는 아직도 따뜻한 체온을 지니고 있는 듯하였다.

'여보, 잘 가시오. 내가 당신을 죽였다고 너무 원망하지 마오. 이꼴 저꼴 안 보고 일찍 죽는 것이 오히려 복되다고 누가 말하지 않았소. 당신에게 마음도 없는 아내가 다른 남자랑 바람 피우는 것을 지켜보며 오쟁이 지는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빨리 세상을 뜨는 것이 더 낫지 않겠소.'

순간적으로나마 금련은 속으로 무대의 영혼을 향하여 위령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버지, 아버지! 이렇게 가시면 어떡해요? 나는 어찌 살라고 이렇게 빨리 가시는 거예요? 아버지, 아버지, 나도 아버지 따라 갈래요."

영아는 뼛가루를 뿌릴 생각도 하지 않고 몸부림을 치며 자꾸만 연못으로 뛰어들려고 하였다. 사람들이 영아를 부축하면서 붙들지 않았다면 정말로 연못으로 뛰어들었을지도 몰랐다. 금련도 울고는 있었지만 영아의 통곡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날아와 꽂히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남편의 장례가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을 누구보다도 서문경에게 먼저 알려주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장례를 다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금련은 위층으로 올라가 위패를 마련하였다. 위패에는 '망부무대랑지령'이라는 신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위패를 모신 작은 탁자 앞쪽에 유리등을 켜놓고 그 뒤에는 깃발과 지폐들을 붙여놓았다. 위패 앞에 무릎을 꿇고 또 한 차례 곡을 하고 난 금련은 서문경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상복을 입은 채 달려가 그대로 서문경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적어도 며칠은 참아야만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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