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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한솔 조동길회장 1년 6개월 "이제부터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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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조동길(48) 한솔그룹 회장은 지난달 말 그룹의 전국 사업장을 누볐다. 지난해 초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둘러봤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작심하고 현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꼼꼼히 살폈다. 조회장은 사업 부서장들에게 "지난해와 비교해 나아진 경영수치가 있는가.

같은 사업을 하는 선진기업의 수익률에는 얼마나 쫓아갔는가"라는 등의 질문을 많이 했다. 부서장들이 진땀을 뺐다고 한다. 하지만 조회장을 포함해 모든 임직원들의 얼굴은 밝았다.

외환위기 이후 침체에 빠졌던 그룹 분위기가 실적호조와 함께 살아 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조회장의 이번 현장점검은 한솔의 재도약을 다짐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1997년부터 내리 5년 동안 적자를 내던 그룹 경영실적은 조회장 취임 1년 만인 지난해에 1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흑자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흑자규모는 그룹 사상 최대 규모였다. 적자에 허덕이던 일부 계열사들도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조회장은 취임 직후 모든 사업장에 목표 이익률을 제시했다. 매출액의 10%이상을 경상이익으로 남기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 사업장은 뼈를 깎는 원가 절감을 했고 주력 업체인 한솔제지는 90여명의 직원을 희망퇴직 형식으로 내보냈다.

*** 수익 안나면 모두 처분

수익이 안 나는 자산은 모두 처분했다. 클럽700 골프장을 비롯해 물류기지로 사용하던 인천터미널 부지 등도 팔았다. 그룹이 이처럼 군살을 빼자 부채 비율은 2백%이하로 낮아졌다.

지난해 그룹 매출액이 전년도와 비슷한 2조7천억원에 그쳤지만 순익을 많이 낸 것도 조회장의 수익 위주의 경영이 빛을 본 결과다.

조회장은 취임 후 신규 사업엔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그는 "계열사 모두가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갖춘 후에 새 사업에 나서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내부를 다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조회장의 경영방침이다. 한솔의 전략은 수익이 안 나는 자산을 줄이고 몸집이 날씬해지면 이익을 내기도 쉽고 자산을 불리는 데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심 사업과 연관돼 있는 유망업종에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투자비를 크게 안 들이면서 현재 그룹이 확보하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제지사업에서 쌓인 환경플랜트 기술을 활용해 한솔이엠이를 설립한 것이나, 제지 원료인 칩 합작공장을 호주에 세운 것은 이런 전략 때문이다.

조회장은 매달 사장단회의와는 별도로 '모니터링 회의'를 주재한다. 계열사의 실적을 평가하고 다음달 계획을 미리 점검하는 회의다. 사흘에 걸쳐 계열사 경영 전반을 점검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실무 아이디어도 많이 내놓는다. 계열사의 자금운용 방안이나 해외시장 개척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한다.

한솔의 경영 구조는 조회장을 정점으로 선우영석 한솔제지 대표이사 부회장과 신현정 경영기획실장이 좌우에서 보좌하는 형태다. 이들 트로이카가 포함된 경영위원회가 사실상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이 회의에서 그룹의 주요 현안이 다듬어지고 확정된다.

*** 신규사업 눈길 안돌려

한솔은 외환위기 직전만 해도 가장 유망한 그룹 중의 하나로 뽑혔다. 종합제지회사로서 탄탄한 수익기반을 갖고 있었다. 96년 내로라하는 그룹을 제치고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내 한때 재계서열 10위에 올랐었다.

당시 대학재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로 꼽혀 인재들이 몰려 들었다. 삼성그룹에서 분가 독립한 지 5년여 만에 거둔 성과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전 동해종금을 인수한 것이 화근이 됐고 1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투자비를 들인 PCS사업마저 운영하기가 버거워졌다.

이에 따라 알짜 사업인 신문용지 사업을 외국에 넘겼다. 30대 그룹엔 들어있지만 흑자기반을 더 다져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회장이 현장을 수시로 점검하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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