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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기름값은 왜 자꾸 떨어지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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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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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Q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선 아래로 떨어졌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기름값은 왜 자꾸 떨어지는 걸까요. 유가 하락은 한국 경제에 좋은 일인가요.

A 원유는 같은 원유라도 생산 지역 등에 따라 이름이 달리 붙습니다. 세계 70여개 국가에서 수십 종의 원유가 생산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두바이유·텍사스중질유(WTI)·브렌트유가 세계 3대 유종으로 불립니다. 두바이유는 우리에게 친숙한 기름입니다. 중동의 아랍에미리트 지역에서 생산되는 이 기름은 중동산 원유의 대표격이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으로 주로 수출됩니다.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기름 현물로 거래됩니다. 한국은 전체 원유 도입량의 70%를 두바이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WTI는 미국 서부 텍사스에서 생산되는 기름으로, 국제유가를 대표하는 가격지표로 활용됩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됩니다. 브렌트유는 영국 북해에서 생산되며 가장 광범위한 지역으로 수출되는 국제적인 유종입니다. 유럽 현물시장과 런던 선물시장에서 거래됩니다.

사우디 9월엔 하루 평균 1020만 배럴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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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유가 하락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두바이유는 7년여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40달러선이 깨졌습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8일(현지시간)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전날보다 0.75달러 내린 배럴당 39.64달러였습니다. 두바이유가 배럴당 30달러대를 기록한 것은 2008년 12월31일 배럴당 36.45달러로 거래된 이후 처음입니다. 두바이유는 4일 배럴당 45달러대를 기록한 이후 계속 내림세를 보이더니 결국 40달러선이 깨졌습니다.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의 하락세도 가파릅니다. 지난해 7월에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를 호가하던 것이 1년4개월 만에 60%나 급락했습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WTI는 장중 30달러대로 떨어졌다가 가까스로 40달러 선을 회복하며 40.75달러로 장을 마쳤습니다.

 기름값 하락은 추세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시장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판매가격을 낮추면서까지 공급을 늘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등에서 생산되는 셰일가스가 석유를 대체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겁니다. 셰일가스는 퇴적암층인 셰일층에 존재하는 천연가스로 오랫동안 채굴이 힘들어 방치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술의 발전으로 미국 등에서 본격적인 채굴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6월 원유 생산량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8%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9월에도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이 1020만 배럴에 달해 역대 최고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습니다.

 이라크 역시 원유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 세계 원유 시장은 하루 300만 배럴 수준의 공급과잉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란에 대한 무역 제재가 풀리면서 이란산 원유가 대거 시장에 풀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도 기름값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원유를 사고자 하는 수요는 부진합니다. 미국의 원유 재고량은 8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았던 중국의 경기가 나빠진 것도 기름값 하락의 원인입니다. 팔고자 하는 물량은 많고, 사고자 하는 수요는 낮으니 자연스럽게 기름값이 떨어지는 것이죠.

글로벌 불황에 수요 감소, 더 하락 전망도

 그렇다면 유가는 어디까지 떨어질까요. 의견은 갈리고 있습니다. “당분간 저유가가 지속할 것”이라고 보는 쪽은 역시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산유국은 기름을 계속 많이 생산할 것이고, 원유 수입국은 경기 부진으로 원유를 많이 수입하지 않을 거란 얘기죠.

 “반등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쪽의 논리는 무엇일까요. 정반대입니다. 바로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일단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수지를 맞추기 어렵게 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지난해 원유 생산량은 전년 대비 26.8% 늘었지만 올해는 5.9% 증가하는데 그쳤습니다. 내년에는 1.3%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 경기가 완만하게나마 회복되면서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는 인도를 새로운 원유 수요처로 지목했습니다. 인도 정부의 제조업 육성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향후 10년간 전력 수요가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거죠. 전기를 만드는 원료 중 하나가 원유라는 건 아시죠. 반등할 것이라고 보는 쪽은 내년에 WTI가 배럴당 60달러선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가 안정에 도움 … 정유업체는 피해 커

 저유가는 한국 경제에 좋을까요, 나쁠까요. 이것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일단 서민 입장에서 나쁠 건 없습니다. 당장 피부로 와닿는 건 주유소에서 고시하는 기름값이 예전보다 낮아졌다는 거죠. 예전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차에 기름을 넣을 수 있습니다. 원유를 이용해 제조하는 각종 물품의 가격도 낮게 유지됩니다. 원유는 섬유·고무·페인트접착제·세제·화장품·의류·안경·휴대폰·가방·신발·자동차 등 일상에서 접하는 거의 대부분의 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됩니다. 원유 가격이 낮아지면 이들 제품의 가격도 낮게 유지될 수 있는 거죠. 물가 상승률을 낮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저유가가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원유를 들여온 뒤 정제해서 휘발유 등으로 만들어 되파는 정유업계는 피해가 큽니다. 유가가 들여올 때보다 더 떨어졌기 때문에 원가 측면에서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엄연히 시세가 낮아진 상황에서 마진을 더 붙이기도 힘듭니다. 석유화학업계도 판매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수익을 많이 남기기 어려워집니다. 실제 지난달 국내 석유제품과 석유화학 수출은 크게 감소했습니다. 석유제품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억달러 떨어진 29억2000만달러, 석유화학제품 수출액은 8억달러 줄어든 32억5000만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여파는 조선업계에도 미칩니다. 최근 조선업계의 주력 제품은 드릴십과 같은 원유 시추설비입니다. 그런데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서 해당 설비에 대한 발주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유가 하락이 조선업계의 일감 감소로 이어졌다는 거죠.

 한국은 오랫동안 기름에 목말라했던 나라입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는 한국의 열악함을 설명할 때 단골로 사용됐던 문구입니다. 제주도 동남쪽 해안 대륙붕에 석유가 대거 묻혀있다는 내용의 ‘제 7광구’ 신화가 한국을 뒤흔든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7광구 신화가 사실로 확인된다 해도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름을 팔아서 얻는 수익보다 체굴 비용이 더 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석유를 얕봐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유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폭등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석유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근검 절약’은 미덕이라는 사실 잊지 마세요.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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