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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놀이문화 신풍속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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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담동에 있는 ‘피규어뮤지엄W’에 가면 피규어가 전시된 1층 카페에 앉아 어린 시절에 봤던 만화 캐릭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술자리와 노래방 등을 헤매던 어른들이 새로운 놀이 공간을 찾고 있다. 체험형 매장을 찾아 움직이는 장난감을 직접 조작하고 유년시절에 하던 전자게임이 있는 카페를 찾아 친구와 하루 종일 게임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관련 시장이 급팽창해 새로문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어른에게 왜 자신들만의 놀이터가 필요한 것일까.

애들처럼 논다, 스트레스 확 날린다

#1 직장인 손찬호(45)씨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1주일에 한두 번은 피규어 박물관을찾아 스트레스를 푼다. 만화나 영화에서 본 추억 속의 다양한 캐릭터를 보며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놀이문화가 됐다. 일이 끝나기 무섭게 동료와 술집으로 향하기 바빴던 그가 달라지자 동료도 하나둘 그를 따라 이 박물관을 찾곤 한다. 그는 “피규어 박물관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동심으로 돌아간다”며 “술을 마셔도, 노래를 불러도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를 날려보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2 직장인 김지훈(35)씨는 결혼 후 처음으로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었다. 주말마다 어린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놀이동산이나 동물원을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홀로 집을 나와 근처에 있는 체험형 전자 매장에 간다. 물건을 사는 목적이 아닌 평소 좋아하는 캐릭터 제품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경한 로봇 사피엔을 직접 조종하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며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어 3~4시간씩 제품을 갖고 놀아도 전혀 눈치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키덜트 위한 추억의 놀이 체험 공간 확산
어른인데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감성과 즐거움을 기억하고 이를 추구하는 ‘키덜트족[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이 늘고 있다.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관련 시장도 급팽창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연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어른들이 아이처럼 원하는 제품을 가까이에서 만져보고 작동시킬 수 있는 체험형매장도 늘고 있다. 물품을 조립하고 작동하며 수집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집 밖에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놀이공간이 생긴 것이다.
  고양시 일산서구에는 피규어부터 건담, 레고, 드론, 움직이는 장난감인 스마트 토이까지 한곳에서 판매하는 750평 대형 규모의 이마트 킨텍스점이 지난 6월 문을 열었다. 사람 키만 한피규어와 방문자가 직접 완구 제품을 작동할 수 있는 체험장으로 꾸며져 있다. 주말에는 로봇을 조종하는 사람과 다른 한쪽에서는 맥주를 한잔 하며 새로 나온 피규어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성인 남성들로 가득 차 일명 ‘남성들의 쉼터’로도 불린다. 이마트 최훈학 마케팅팀 팀장은 “다른 지역의 매장과는 달리 30대 남성 소비자가 주요 고객층이고, 전체 소비자 중 30%가 남성”이라며 “피규어와 레고, 건담을 보며 과거 유년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이곳에서 찾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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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뮤지엄W 입구에는 3m 높이의 로봇 태권브이 피규어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장난감 매장, 피규어 박물관, 게임 카페
종전까지 키덜트족의 놀이공간이 피규어나 만화에 국한됐다면 요즘엔 이처럼 체험형 매장부터 전시형 박물관, 친구와 부담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카페까지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어린아이처럼 놀 공간을 찾으며 잠시나마 어릴 적 순수했던 마음으로 돌아가며 마
음을 치유하려는 성인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 스트레스 등으로 망가진 마음과 몸을 재충전하려는 것이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방 탈출 카페를 찾은 하윤진(26·여)씨는 “친구들과 매번 밥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는 일이 따분했는데 이런 카페에 친구와 함께 문제를 풀고 방 탈출 게임을 하니 학창시절도 생각나고 동시에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유행한 옛날 게임을 할 수 있는 레트로 카페 트레이드 한대윤 대표는 “어린 자녀와 함께 찾아와 아빠가 어렸을 때 했던 게임이라고 설명해 주며 아들보다 더 신나서 게임에 열중하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국민대 사회학과 이장영 교수는 “지금까지는 어른들의 놀이는 다 함께 어울려서 해야 하는것으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각자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놀이로 발전하고 있다”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정말 좋아하는 물품이나 게임을 찾고 자기만의 문화공간을 찾는다”고 분석했다.

글=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사진=박건상(프로젝트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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