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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기업 정보로 억대 부당이득, 회계사 13명 기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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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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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 소속 회계사인 이모(29)씨는 지난해 말 상장회사인 ㈜대상의 감사 업무를 맡았다. 실적을 살펴보던 이씨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예상보다 대상의 실적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됐고 대상의 주식을 미리 매수했다. 확실한 정보라고 생각해 아버지에게도 이를 알렸고 아버지도 주식을 샀다. 대상의 재무제표가 공시된 이후 예상대로 주가가 올랐고 이씨 부자는 주식을 팔아 돈을 벌었다.

삼일·삼정·안진회계법인 소속
실적 공개 전 주식투자로 차익
검찰, 전액 환수하고 2명 구속
단순 누설한 19명은 징계 통보

  이런 방식으로 이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11개 종목에 투자해 5억6000만원을 벌었다. 이씨의 아버지가 번 돈도 5500여만원이나 됐다. 그러나 희열은 잠시였다. 검찰 수사로 이씨는 9개월 만에 구속됐다. 그동안 얻은 이익은 모두 환수 조치됐다.

 국내 1~3위 대형 회계법인 소속 20대 후반~30대 초반 회계사 32명이 감사 대상 기업의 실적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했다가 적발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 이진동)는 미공개 실적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한 혐의로 13명을 기소했다. 이씨 등 2명을 구속 기소하고 4명을 불구속 기소, 7명을 약식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6억1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위반 등), 배씨는 3억2400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불구속 기소된 이모(31)씨는 이씨 등에게 ‘제일기획’ ‘이마트’ 등의 실적 정보를 넘겨주고 주식 투자를 해 8900여만원의 이익을 취득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 약식기소된 박모(29)씨 등은 다음카카오 등의 미공개 정보를 누설한 혐의(공인회계사법 위반 등)를 받고 있다. KB국민카드 등의 공시 전 실적 정보를 누설한 회계사 19명은 금융위원회에 징계하라고 통보했다. 적발된 회계사들은 삼일회계법인 26명, 삼정회계법인 4명, 안진회계법인 2명 등이다. 이들은 입사 동기나 대학 친구로 32명 중 10명이 같은 대학 출신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국내 회계법인 ‘빅4’ 중 세 곳의 회계사들이 망라돼 있다”고 말했다.

  이씨 등은 총 31개 기업의 정보를 얻어 이 중 14개 기업에 주식 투자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범행 대상 중엔 아모레퍼시픽·엔씨소프트·다음카카오·한샘·대상·제일기획·이마트가 들어 있었다. 이들은 공모 과정에서 “앞으로 주식 관련 얘기는 ‘텔레그램’을 이용하자”는 등의 문자도 주고받았다.

 문찬석 서울남부지검 2차장은 “이번 사건은 전문가 집단의 심각한 직업 윤리의식 부재를 드러낸 것”이라며 “회계법인의 주식보유내역 신고 대상을 상무보 이상에서 모든 전문인력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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