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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다리를 잘 놓아야 문장이 살아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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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다. 집주인과 여행객, 배달음식점과 주문자 등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 주는 매개를 통해 수수료를 챙기는 앱이 쏟아지는 이유다. 이들 사업의 성패는 결국 연결의 만족도에 의해 좌우될 터. 좋은 문장의 요건도 다르지 않다. 연결을 잘못하면 비문(非文)이 된다.

 ‘와/과’ ‘(이)나’ ‘-거나’ ‘-고’ ‘-며’ 등은 단어나 구 따위를 이어 주는 접속조사와 연결어미다. 이들의 앞뒤에 놓이는 말은 같은 자격이어야 한다. 앞뒤에 오는 말들이 대등하게 연결되지 않으면 어색한 문장이 돼 버린다. “공급자와 수요자”처럼 앞에 명사가 왔으면 뒤에도 명사가 와야 하고, “판매하거나 구매하는 장소”처럼 앞에 동사가 왔으면 뒤에도 동사가 와야 하는 식이다. 절은 절끼리, 구는 구끼리 어울린다. 대개 문장이 길어지면 이 원칙이 무너지곤 한다.

 “부주의하거나 착각으로 인해 잘못 처리된 건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있나”와 같은 경우다. “부주의로 인해 잘못 처리된 건이나 착각으로 인해 잘못 처리된 건”처럼 쓰면 같은 표현이 반복돼 문장이 너무 늘어진다. 접속어 앞뒤로 같은 서술어가 반복될 때는 앞의 서술어를 생략해 간략히 표현하는 것이 요령이다. 이때 자격이 다른 말로 연결시켜선 안 된다. 형용사 ‘부주의하다’와 명사 ‘착각’은 대등하게 이어질 수 없다. 명사 ‘부주의’와 ‘착각’이 ‘건’에 걸리는 형태인 “부주의나 착각으로 인해 잘못 처리된 건”이라고 해야 된다.

 “배달음식 주문이나 숙박시설을 예약할 때 더 좋은 조건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게 일상적인 모습이 됐다”도 마찬가지다. “배달음식 주문이나 숙박시설을 예약할 때”라고 하면 안 된다. 명사구와 동사구를 대등하게 연결해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문장이 됐다. 둘 다 서술어를 사용해 같은 동사구로 만들거나 명사구로 만들어야 한다. “배달음식을 주문하거나 숙박시설을 예약할 때” “배달음식 주문이나 숙박시설 예약 때”라고 하는 게 바르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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