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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손편지에 감동받은 그녀, 손편지 써주는 벤처 차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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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름 ‘손편지 제작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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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조아름(26·사진 가운데) 대표가 ‘손편지 제작소’를 시작한 건 언니의 편지 때문이었다. 세 살 많은 언니 정인씨는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이면 동생 조씨에게 직접 쓴 손편지를 주곤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나 흐린 날, 혹은 동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도 손편지를 건넸다. 하지만 아름씨는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답장을 쓰지 않았다.

 조 대표가 스물한 살 되던 해 언니 정인씨는 긴 편지를 보내왔다. ‘아직 어린 네가 편지를 쓸 마음의 작은 여유도 없다는 게 언니로서 미안하다. 앞으로 네가 더 기댈 수 있는 언니가 되겠다’는 내용이었다. 조 대표는 그때 처음으로 답장했다. “편지가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손편지를 대신 써주는 회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죠.”

 지난해 6월 사무실을 열고 손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시작했다. 손편지를 의뢰한 사람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여자친구에게 손편지를 보내 달라는 군인, 식당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고생한 어머니께 손편지를 쓰고 싶다는 아들도 있었다.

 “한 군인이 흔들리는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좀 대신 보내달라고 했어요. 손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림도 못 그린다고요. 정성껏 손편지를 대신 써서 보냈더니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회복됐다며 고맙다고 하더군요.”

 지난 10월에는 서울시가 서울의 새로운 브랜드를 선정하는 시민 심사단, 전문가 심사단 등 ‘천인회의’ 참가자 1400명에게 보내는 손편지 초청장을 써주기도 했다. 직원 3명으로는 이렇게 많은 손편지를 쓸 수 없어 양천구청 일자리센터의 저소득층과 경력 단절 여성들에게 비용을 내고 손편지 쓰기를 위탁했다. 손편지를 받은 시민들은 예상 못한 손편지에 감동했다고 댓글을 올리기도 하고, 이 편지를 발송한 담당 공무원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손편지 제작소는 지난 4월 세월호 1주기에 ‘리멤버 레터 라이팅’이라는 특별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자원봉사 학생 30명과 함께 네티즌들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보낸 수백 건의 추모 메시지를 모아 손글씨 편지로 제작,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그가 생각하는 손편지의 힘은 진정한 소통이다. “e메일이나 문자, SNS로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보내고, 쉽게 지우고, 쉽게 말하는 디지털 메시지는 손편지와 본질적으로 다르죠. 편지 쓰는 건 오롯이 집중해야 하는 일이고,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립니다. 이런 시간과 정성이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조 대표의 다음 목표는 “우리말 쓰기가 서툰 다문화 가정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뒤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소외를 없앤다고 믿습니다. 편지로 소외된 사람들을 세상으로 불러내고 싶습니다. 한글을 잘 모르는 이주여성까지도 말이죠.”

만난 사람=진용학 인턴기자 dydgkr669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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