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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劍 앞에 일본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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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아아아아아 … 압, 머리!"

"끼야아아아아아 … 악, 허리!"

야생동물의 울부짖음 같은 기합 소리가 사방으로 튄다. 매섭고 날렵한 죽도(竹刀)가 부딪치며 불꽃을 튄다. 도장 안은 스무명의 검사(劍士)가 내뿜는 열기로 숨이 막힐 듯 하다.

훈련이 끝났다. 호면(護面)을 벗고 정중히 예를 취한 뒤 자리에 앉는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눈을 감고 참선의 세계로 들어간다. 충북 음성군에 자리잡은 대한검도회 중앙연수원. 남녀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으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7월 4일부터 7일까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선수들이다. 3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선수권은 올해로 12회째다.

체급 구분이 없는 검도는 남녀 개인과 단체, 4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일본의 위세에 눌려 지금까지 단 한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했던 한국은 이번 대회 남자 단체에서 첫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남자 개인과 여자 종목에서도 낭보를 기대하고 있다.

남자팀 박학진(49)감독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한다'를 훈련 컨셉트로 잡았다. 그동안 매번 큰 대회를 앞두고는 군 특수부대 입소 등 '강인한 정신력 배양'훈련을 해왔으나 실제 경기에서는 별 도움이 안됐다는 교훈에 따른 것이다.

"검도는 나를 다스려야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운동입니다. 그동안 우리 선수들은 지나치게 조급하게 승부를 걸다 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상대가 약점을 보이고 뛰어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도입한 게 '참선'이다. 훈련이 끝난 뒤 30분 정도씩 한다. 선수들은 처음에는 '자꾸 잡생각이 난다'며 투덜거렸고, 심지어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밤중에도 불을 꺼놓고 '수행'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효과를 체험한 것이다.

여자팀 방규건 감독은 "여자의 경우 태도.기합.존심(存心.상대를 타격한 뒤에도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 등 '아름다운 검도'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명상.호흡 외에 편지쓰기.다도 등도 시키고 있습니다"라고 귀띔했다.

이번 대회에는 42개국이 출전한다. 미국.캐나다.브라질 등은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그렇지만 우승은 한국과 일본이 다툴 게 확실시된다. 두 나라의 실력은 종이 한장 차. 지난해 11월 국내 대회 때 일본 측에서 건너와 전력 탐색을 하고 갔다. 일본도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검도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일본은 검도를 경기화했고 지금까지 세계 검도계의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왔다. 이들은 '순수 무도'라는 명분을 앞세워 검도의 올림픽 종목화를 반대하고 있으며 경기 방식과 복식(服飾)도 전통 일본식을 고집하고 있다.

이번 대회 단장을 맡은 이종림 대한검도회 부회장은 "우리가 금메달을 딴다면 꼭 36년 만이다. 국제 검도계에서 한국의 법통을 되찾는 '광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음성=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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