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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이어온 한국미 원형 이곳에 모였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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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보 8점 등 1만5000여 소장품 중 고른 명품들. 삼국시대 ‘기마인물모양 토기’. [사진 호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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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 명품(名品)이다. 서울 도산대로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 들어선 이들은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가 줄을 선 진열장 앞에서 안복(眼福)에 겨워 한숨짓는다. ‘호림 명품 100선’ 전에 나온 국보는 3점, 보물은 19점이지만 그 외 출품작도 우열을 가리기 힘든 일품(逸品)들이다. 호림박물관 대표 소장품인 국보 제222호 ‘백자청화매죽문호’의 보험가만 300억원이니 돈으로 헤아릴 수 있는 명품이 아니다. 한민족이 수천 년 탐구해온 한국미의 원형이 모여 있다.

호림박물관 ‘명품 100선’전
가야·신라 부장품 토기 술잔부터
보험가 300억 ‘백자청화매죽문호’
고려·조선시대 진귀한 자기까지
“6개월마다 전시품 바꿔 상설 전시”

 시작은 흙이다. 2층 전시실에서 만나는 ‘상형토기-흙으로 빚은 바람’은 가야와 신라시대에 제작된 다양한 형태의 토기를 보여준다. 죽은 이의 무덤에 부장품으로 주로 쓰인 이 토기들은 사자(死者)가 저승에서도 현세와 같은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후손의 마음을 담고 있다. 곡물 창고 모양의 집, 수레나 배를 닮은 탈 것, 하늘·땅·물을 오갈 수 있는 오리 모습의 술잔 등 영혼을 내세로 이끄는 상징과 기능이 겹쳐졌다. 요즘 만들었다 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디자인 감각이다.

 불교는 한국미술사의 근간을 이루던 주제였다. 3층 전시실 ‘불교미술-마음으로 빚은 바람’은 1000년 국교(國敎)의 신앙이 어떻게 다양한 미술품으로 확산되었는가 살피는 전시다. 관음보살을 뜻하는 정병을 머리 위 보관에 올리고 손에는 경책을 든 ‘금동대세지보살좌상’(보물 제1047호)은 불교미술이 찬연히 꽃피었던 고려의 힘을 응축하고 있다. 국보 제211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 보물 제808호 ‘금동탄생불’, 14세기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등이 불심(佛心)의 향기를 내뿜는다.

 4층에 오르면 호림의 이름을 드높인 도자들이 색색묘묘 자태를 자랑한다. 고려청자와 조선 분청사기 이외에도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식의 실물이 많아 공부되는 섹션이다.

뚜껑 모양을 한 화려한 문양의 ‘분청사기상감연판문개’는 그 기능이 무엇일까 궁금하게 만든다. 고려시대에 청자와 같은 형태로 제작된 백자는 순백의 조선 백자와 달리 연 노란색 빛깔이 특이하다. 가녀린 손잡이와 주둥이가 눈길을 끄는 국보 제281호 ‘백자주자’, 뚜껑까지 완벽한 보물 제1540호 ‘청자표형주자’는 방금 가마에서 꺼내온 듯 생생하다.

 올해부터 기획전시실에서 별도로 진행되는 첫 전시 주제는 ‘해주요와 회령요’다. 근대기에 황해도 해주군 일대에서 생산된 백자와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제작된 도기를 재발견하는 자리다. 다채로운 색감과 자유분방한 문양이 상큼한 해주백자는 도기에 그린 민화 같다. 특유의 짚 잿물이 흘러내린 회령도기는 투박하지만 현대적인 한 폭의 단색화를 연상시킨다.

 이장훈 학예연구사는 “호림 컬렉션의 전모를 골고루 한 번에 보고 싶다는 관람객들 주문이 많아 상설전은 명품 위주로 꾸려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략 6개월에 한 번씩 전시품이 부분 교체된다. 내년 2월 27일까지. 02-541-3523.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호림박물관=문화재 애호가 호림(湖林) 윤장섭(92) 선생이 1982년 세운 고미술 전문 사립박물관이다. 서울 신림본관과 신사분관에서 1만5000여 점 소장품을 상설전과 특별전 등으로 나눠 전시한다. 국보 8점, 보물 52점, 서울특별시 지정문화재 11점을 보유하고 각 분야를 전공한 학예연구사들이 새로운 주제를 잡아 참신한 기획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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