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北核 덕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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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해결 협조 얻으려 한국이 크게 양보"

한국과 러시아 정부 사이에 이루어진 옛 소련 경협 차관 상환 합의 내용에 대해 러시아 언론과 전문가들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타결된 협상"이라고 만족해 하는 분위기다.

지난 5월 말 현재 총 22억여달러의 경협 차관 채무 중 6억달러 이상을 탕감 받은 것은 물론 남은 상환금을 23년에 걸쳐 분할 상환키로 한 것이다. 게다가 그중 일부는 방산물자로 갚기로 합의했으며 이자율도 아주 유리하게 적용받았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들은 러시아 측에 유리하게 협상이 타결된 배경에 대해 "한국 정부가 북핵 위기와 관련, 러시아의 협조를 얻기 위해 상당 부분 양보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일간 베도모스치 인터넷판은 한.러 간 경협 차관 합의 내용을 자세히 전하면서 "채무 중 상당액을 탕감받은 것은 물론 남은 15억8천만달러 가운데 3억달러에 달하는 채무도 방산물자로 갚기로 합의했다"고 협상 결과를 높이 평가했다.

신문은 "한국에 제공될 방산물자의 구체적 품목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T-80 탱크, BMP-3 전차, 경비정, 휴대형 고사(高射) 로켓포 '이글라' 등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한국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산물자 공급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커다란 성과"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러시아 재무부 대외채무국장을 지낸 안드레이 체레파노프 모스크바 국제외환협회 회장의 말을 인용, "남은 상환금에 대한 이자율이 (리보 금리를 빼고) 1.5%를 넘지 않으면 아주 성공적인 협상으로 볼 수 있다"며 한.러 양측이 합의한 '리보+0.5%'는 아주 잘된 것이라고 평했다.

인터넷 통신 '뉴스루'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극동연구소 바실리 카신 연구원의 말을 인용, "1989~91년 남한에서 받은 경협 차관은 소련이 남한을 외교적으로 인정하는 대가로 받은 정치적 성격의 것이었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번 채무 재조정도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는 시점에서 한국이 모스크바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해석했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cj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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