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열살 팔레스타인 어린이, 벌써 전쟁 세번이나 겪어. 한국 관심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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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크라엔뷜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 집행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이제 겨우 열 살인데, 벌써 전쟁을 세 번이나 겪은 어린이가 있다. 아이의 잘못은 아니다. 잘못된 장소에 태어난 것이 아이의 유일한 불행이었다. 아이가 사는 곳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가자지구다.

피에르 크라엔뷜(Pierre Krahenbuhl)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은 아이의 사연을 전하며 “67년간 동안 이스라엘과의 분쟁에서 해결점을 전혀 찾지 못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절망과 분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을 돕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5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만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곳을 떠나 난민 신세가 된 것은 2차세계대전 무렵이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태인들이 고향 땅에 나라를 세우겠다며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면서다. 특히 1948년 이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뒤 주변 아랍국과 군사적 분쟁을 벌이며 팔레스타인 난민 수는 크게 늘어났다.

UNRWA가 설립된 것도 이 때다.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49년 유엔 산하 기구로 탄생했다. 총 3만여 명의 직원들이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에서 활동 중이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들이다. 교육과 의료·보건 서비스 지원이 이들의 주임무다. 700개의 학교를 세워 5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9년간의 기초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1950년 75만명이었던 팔레스타인 난민 수는 지금은 500만명(2015년 현재)까지 늘어났다. 크라엔뷜 집행위원장이 한국에 온 것도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은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협정’을 맺고 자치권을 보장받았지만 양측 간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6~8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민간인 15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아동이 약 540명이었다. 최근에는 유대교 극우 활동가들이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동성지인 '알아크사원'을 경찰의 호위 속에 방문했다 이슬람교도들과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보복으로 인해 유혈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크라엔뷜 위원장은 “항상 전쟁과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일한 희망은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은 교육 부문에서 성공한 국가”라며 “우리의 활동에 적용할 수 있는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배우면서 협력관계를 더욱 다져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책 한권을 보여줬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때 폭격을 맞은 학교에서 발견된 루아 카이드라는 13세 소녀의 것이었다. 공책에는 루아가 지은 시가 적혀 있었다. “희망이라는 것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 친구와도 같다. 때로는 날 떠날 수도 있지만 항상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크라엔뷜 위원장은 “이 소녀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바로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였다. 우리는 소녀에게 ‘이 공책을 전세계에 소개하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 루아가 폭격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한국은 올해 UNRWA에 180만 달러를 지원했다. 미국이 3억8000만 달러, 유럽연합(EU)과 사우디아라비아가 1억 달러, 일본이 4000만 달러를 지원한 것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다. 규모로 따지면 지원국 중 40위 수준이다. 하지만 크라엔뷜 위원장은 “이건 경쟁이 아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도 교육과 여아 지원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번 강조한 만큼 앞으로 한국으로부터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이라고 말했다.

크라엔뷜 위원장은 또 “한국인들이 중동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난민들에게 여러 조건이 개선된다면 한국처럼 충분히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UNRWA가 출범한 195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때이기도 하다. 이후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계속 난민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많은 것을 이뤄냈다”면서다.

크라엔뷜 위원장은 6일 조태열 외교부 2차관과 김영목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을 만나 팔레스타인 난민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양측간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한다.

유지혜 기자·하준호(연세대 정치외교학 3년) 인턴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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