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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헤영 기자의 '오후6詩']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 주인공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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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자신의 집을 팔고, 자신의 그림과 피를 팔아
그 돈으로 바다도 덮을만큼 장미꽃을 샀다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겠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꽃으로 바꿔놓았다오

그대가 아침에 깨어나면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몰라
마치 꿈의 연장인 것처럼 광장이 꽃으로 넘쳐날 테니까
정신을 차리면 궁금해 하겠지 어떤 부호가 여기다 꽃을 두었을까하고
창 밑에는 가난한 화가가 숨도 멈춘 채 서 있는데 말이야

만남은 너무 짧았고 밤이 되자 기차가 그녀를 멀리 데려가 버렸지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넋을 빼앗길 듯한 장미의 노래가 함께 했다네
화가는 혼자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도 꽃으로 가득찬 광장이 함께 했다네

백만 송이 장미(миллион алых роз)- 알라 푸가초바(Alla Pugatcheva)

우리나라에서는 백만송이 장미로 유명한 심수봉씨 노래의 원곡 가사로, 과거 소련에서 인기를 끌던 시인 안드레이 안드레예비치 보즈네센스키가 적은 시를 가사로 사용한 것 입니다. 텔레비전과 신문 등 각종 매스컴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 시인은 러시아 문학 속에서도 독자적인 시어를 개발해 새로운 표현력으로 언어의 마술사라고도 불립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파스테르나크의 시를 읽어주며 문학을 친근하게 접하게 해주었죠. 전쟁 중 돌아가신 아버지가 전해 준 고야의 작품집 속 그림을 통해 전쟁에 대한 참상을 표현한 시 '나는 고야'가 그의 대표작입니다.

가사를 보면 한 가난한 화가가 자신의 모든 걸 팔아 사랑했던 여자에게 백만 송이의 장미를 선물했습니다. 그것을 본 여자는 누가 선물했는지 알기도 전에 순회공연을 떠나면서 두 사람은 평생 만나지 못했고, 모든 걸 잃은 화가는 무명의 긴 시간을 보내다 가난과 질병 속에서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합니다. 한 여자를 위해 백만 송이의 장미를 준비했다는 애틋한 내용의 이 시는 러시아 작가 콘스탄틴 파우스톱스키(1892~1968)의 단편 '꼴히다'에서 소재를 취해 시를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가사 속 이야기는 실제 화가의 이야기라 더욱 놀라웠는데요. 그 진실성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가 프랑스 출신 여배우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 남아 있고, 196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 그림 속 여배우와 닮은 여성이 목격되기도 했다네요. 사연을 알고 들으니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는 곡입니다.

강남통신 송혜영 기자 sincerehere@joongang.co.kr

[송혜영 기자의 오후 여섯 時]
사는게 뭐라고
어머니의 빈 자리
벼랑을 건너려면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사무실의 멍청이들
시인이 사랑 고백을 거절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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