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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 프로젝트, 온라인서 퍼지는 ‘1일1폐’ 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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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기자

계절이 바뀌는 시기, 집안 정리가 필요하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내가 오늘 버린 물건들’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버리기를 실천하는 글들도 눈에 띈다. 네이버 ‘정리력:하루 15분 정리의 힘’ 카페는 정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다. 동화작가 선현경씨는 하루에 하나씩 버리는 ‘1일1폐 프로젝트’를 통해 삶에 대한 태도까지 바꾼 경우다.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버리기를 한 달 동안 지인들과 공유했다는 직장인 김연희(40)씨는 “가득 쌓인 물건을 보면 업무 효율도 떨어지고 짜증이 났는데 버리고 나니 섭섭하기는커녕 속이 시원했다. 혼자 했다면 한 달을 지키지 못했을 텐데 온라인상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시작하니까 끝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버리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버려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함께 버리자”고 말이다.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쓴 동화작가 선현경

양말·가방부터 인간관계 고민까지 … 마음의 서랍도 비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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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경 작가

“양말 하나라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양말은 내가 설레지 않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동화작가 선현경(45)씨가 ‘1일1폐 프로젝트’(하루에 물건 하나씩 버리기)의 첫 번째로 검은 양말 한 켤레를 선택한 이유였다. 선씨는 2013년 4월 22일 양말을 시작으로 이후 1년 동안 집안에 있던 물건을 차례로 버렸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양말만 버렸다. 하루하루 신었던 양말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선씨는 “양말 한 짝도 못 버리던 내가 양말을 하나씩 버리면서 달라졌다.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버리면서 쾌감을 느낄 줄 나도 몰랐다”고 말했다.

추억 때문에 버리기 힘든 물건들
일기처럼 그림과 글로 남기고 이별
충동구매 줄고 오래 쓸 것만 사게 돼

 선씨는 이전까지 ‘아무것도 못 버리는 여자’였다. “장난감 상자부터 포장지, 리본 등 쓸 만하다 생각하면 뭐든 다 모으는 편이었어요. 옷은 기본이고 양말이나 속옷까지 뭘 버려본 기억이 없었죠. 요즘 양말이나 속옷은 어찌나 튼튼하게 만드는지 구멍이 나지 않아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들, 호더’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추천했다. “너희 집 식구들이 꼭 봐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큐멘터리는 물건에 집착하고 수집해서 저장하는 호더(hoarder)에 대한 내용이었다. 쌓아두기만 하고 절대로 버리지 않아 쓰레기 더미가 돼버린 곳에서 위로받는 사람들을 호더라고 한다.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 순간 다큐멘터리 속 호더의 공간과 닮은 자신의 집과 마주했다. “책, 장난감, 옷 등으로 집이 터질 것 같은 상황이더군요. 그런데도 뭐 하나 버릴 게 없었어요. 이것도 저것도 없어지면 아쉬울 것 같았고요. 문득 내가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안정을 찾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위기의식을 느낀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양말통을 뒤집어 안 신는 것과 잘 신는 것을 구분하는 거였다. 안 신는 양말이 잘 신는 양말만큼 많았다. 스스로 멀쩡한 걸 버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선씨는 안 신는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일기 형식으로 버릴 양말에 대한 글을 쓰고 그림으로 그려 남겼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물건에 대한 추억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씨는 “버릴 물건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써 놓으면 더 쉽게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쓰면서 이별 의식을 하는 기분이 들며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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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경 작가는 하루에 물건 하나씩 버리며 이를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썼다. 안 신는 양말부터 작아진 치마, 딸아이가 쓰던 슬러쉬 컵까지 아끼던 물건이라도 그림으로 그리고 그에 얽힌 사연을 적어 간직하면 쉽게 버릴 수 있었다. [그림 선현경]

 선씨는 버릴 물건들을 하루 이틀 직접 사용했다. 누군가 그 물건에 대해 칭찬하거나 관심을 보이면 곧바로 건네기 위해서였다. “나는 필요 없는 물건을 버려서 좋고, 내가 버리는 물건은 새 주인을 만나서 좋고, 또 새 주인은 내가 버린 물건이 필요해서 좋죠. 이보다 완벽한 재활용이 어디 있겠어요.” 지인들과 함께 버릴 물건을 모아 벼룩시장도 열었다. 팔고 남은 것들은 전부 아름다운 가게로 보냈다. 120만원의 수익은 길고양이를 위해 기부했다.

 차츰 소비 습관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언젠가 버려질 물건을 사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 되묻게 됐어요. 그러자 물건을 덥석 사는 일이 줄고 더 튼튼하고 좋은 물건을 사게 되더라고요.” 가족들도 바뀌었다. 처음엔 자기 물건을 버릴까 봐 두려워했던 남편과 딸은 물건 살 때 선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비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안 신는 양말로 시작한 버리기 리스트는 식기장을 가득 채웠던 예쁜 유리병으로, 직접 담근 마늘종 장아찌로, 남편에게 선물했던 가죽 모자, 20년 전 캐나다 유학 시절 즐겨 사용하던 가방, 반지, 목걸이 등으로 넓어졌다. 버리는 대상이 물건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물건과 함께 생각과 감정도 버리게 됐다.

 “고민하던 인간관계도 버리고,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는 오만도 버렸어요. 마법 같더라고요. 물건처럼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진짜 없어지는 게 아닌데도 스르륵 가라앉는 감정들을 봤어요.”

 선씨는 1년간 버리며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을 모아 지난해 가을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책을 냈다. 다시 1년이 지난 요즘도 버리기는 진행형이다. 지난달 중순 가족과 함께 미국 포틀랜드로 거처를 옮겼다. 살던 집을 세주고 딱 그 집세로 갈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그곳이 포틀랜드였다. 딸의 학교나 거주할 집도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떠났다. 1년 반 동안 머물 계획이다.

 “짐이 너무 많아 움직이지 않은 채 계속 눌러앉아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을 마련하고 거기에 물건을 쌓아 놓으면서 안락함에 안주하게 됐던 거죠. 내가 쌓아놓은 물건들이 내 발목에 무겁게 매달려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렵게 만드는 거 아닐까요. 하나씩 버리다 보면 발목을 잡아채는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겁니다.”

◆선현경 작가는◆

홍익대 도예과 졸업. 2004년 동화 『이모의 결혼식』으로 제10회 황금도깨비상 그림책 부문 수상. 주요 작품 『엄마의 여행가방』 『판다와 내 동생』 『나마스떼 아리』 『이우일·선현경의 신혼여행기』 『선현경의 가족관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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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의 기술

버릴 물건 보관함 만들어 일정 기간 안 쓰면 처분

현대사회는 소비를 부추긴다. 대형마트의 쇼핑카트는 80년대 80L에서 요즘은 180L로 2배 이상으로 커졌다. 미래학자 마틴 린드스트룸은 “쇼핑 카트의 크기가 두 배 커지면 소비자는 30% 더 구매한다”고 말했다.

 쇼핑 채널도 다양해졌고 구매 방법은 더 쉬워졌다. 소셜커머스, 온라인 쇼핑몰, 마트, 편의점, 홈쇼핑 등 생필품을 쉽고 빠르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쓰지 않고 방치되는 물건도 늘어났다. 유행하는 디자인의 의류나 액세서리 등을 대량으로 빠르게 생산하는 SPA(패스트패션) 브랜드 제품은 가격이 저렴해 꼭 필요하지 않아도 부담 없이 사게 된다. 정리컨설턴트 윤선현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는 “컨설팅을 하기 위해 가정집을 방문하면 평균 70%의 물건이 쓰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이 중 많게는 50%, 평균적으로 30% 정도의 물건은 당장 버려도 상관이 없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쓸데없이 많은 물건부터 처리
“설레지 않는 건 무조건 없애라”
폐기·기부로 정리하면 깔끔

 쓰레기통에 무언가를 버릴 땐 마치 돈을 버리는 것처럼 아까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떤 물건이든 값을 치르고 포장을 벗기는 순간 상품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값비싼 명화나 명품이 아니라면 그저 중고품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물건에 후한 점수를 준다. 바로 추억 때문이다. 그러나 물건은 물건일 뿐이다. 물건을 버린다고 해서 추억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선현경 작가는 “무엇이든 버려서 그것과 연관된 기억까지 사라진다면 추억이 아니다. 추억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고 말한다.

 ‘언젠가 쓰지 않을까’하는 불안도 버리기를 주저하게 한다. 전쟁과 배고픔을 겪은 부모 세대는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교육받은 자녀들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무언가 쟁여놔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그 ‘언젠가’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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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무엇부터 버리나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첫 번째 수확은 정서적인 개운함이다. 또 쓸데없는 물건이 사라진 공간은 효율을 높인다. 물건들이 쌓여있으면 원하는 것을 찾기 어렵지만 딱 필요한 것만 놓여있을 땐 쉽게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물건 고르는 안목도 생긴다. 버리지 않고 오래 사용할 것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선 작가는 “덥석 사는 일이 줄고 대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더 튼튼하고 좋은 물건을 고르게 된다”고 말했다.

 맨 처음 뭘 버려야 할지 고민된다면 주위를 둘러보자. 유난히 많은 물건이 바로 버릴 대상이다. 하루에 3가지씩 물건 버리기를 실천하고 있는 주부 한지현(45)씨는 “원래 그릇과 컵을 좋아해 예쁜 것들이 보이면 고민 없이 샀는데 버리면서 보니 정말 사용하지 않는 그릇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찬장 곳곳에 있던 그릇과 컵을 버리고 나니 다음엔 예쁜 게 보여도 선뜻 지갑을 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혼자서 버리기 일기를 적을 수도 있다. 직장인 김현지(34)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비밀글로 버릴 물건을 작성하고 있다. 김씨는 “적다 보면 내가 버린 물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어떤 물건이 많고, 필요하지 않은지 깔끔하게 정리된다”고 말했다.

 버리기의 시작은 정리다. 우선 버릴 것, 기부할 것, 되팔 것, 재활용할 것, 손질하거나 수리할 것으로 구분한다. 버릴 것에는 기준이 있다. 일본의 유명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버릴 물건을 고를 때 ‘설레지 않는 물건은 무조건 버리라’고 했다. 설레지 않는다는 건 필요하지 않고 편리하지도 않다는 얘기다.

 1년 넘게 입지 않은 옷,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 너무 많은 양말, 편하지 않아 꺼리게 되는 옷 등 설레지 않는 건 버려라. 그래도 선뜻 버리기 어렵다면 임시 보관함을 만든다. 윤선현 대표는 “임시보관함은 3개월, 6개월, 9개월 이상 꺼내지 않을 경우 버리기로 미리 정해 오늘 날짜와 언제까지 보관할지를 적은 종이를 붙여놓으라”고 조언했다. 만약 6개월이나 9개월 뒤에도 넣어둔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계속 꺼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용할 거 같다는 이유가 없어졌으니 과감하게 버릴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이별, 나눔

기부나 되팔기는 버리기를 위한 좋은 방법이 된다.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굿윌스토어(www.goodwillsongpa.org) 등은 기증한 물건을 기부금으로 책정해 연말정산에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매년 기부하는 사람은 증가하는 추세다. 아름다운가게에 따라르면 개점 첫해인 2002년 5만 점이었던 기증품은 지난해 1600만 점으로 증가했다.

 다만 기부할 때 고려해야 할 것도 있다. 전승희 아름다운가게 홍보팀 간사는 “나에겐 소중한 물건이지만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착용했던 내의나 부서진 물건, 코팅이 벗겨진 주방용품, 파손된 책 등은 기부할 수 없다.

 최근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눔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커뮤니티에 오르는 ‘드림’ 글은 자신에게 필요없는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무료로 나눠주며 친목을 도모한다. 물건을 받은 사람이 커피나 아이 과자 등으로 보답하기도 한다.

 인터넷 중고물품거래 사이트나 벼룩시장 등에서 물건을 팔 수도 있다. 개인 간 거래 과정이 번거롭거나 익숙하지 않다면 두박스(www.dobox.org)처럼 물품 판매 중계를 대신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물건을 수거해 판매한 후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입금해준다.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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