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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당한 어린이… 어른이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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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성추행당한 어린이가 법원에 출두해 증언하는 문제가 최근 논란을 빚고있다(본지 6월 18일자 7면). 잇따른 어린이 성폭행 사건도 부모들의 걱정을 더해준다. 딸만 가진 엄마 중 94%는 "자녀가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대표 박금자)의 최근 조사결과다.

경찰청이 최근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는 지난 한 해 동안 하루에 3건 꼴로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만약 내 아이가, 또는 친지나 이웃아이가 성폭행 당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과 조중신 열림터(성폭행 피해자 보호시설) 원장으로부터 부모의 대처법을 알아봤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아이가 성추행을 당한 경우, 외형적 상처가 크지 않아 부모가 금방 알아차리기 힘들다.보통 목욕할 때 부위가 "따갑다"는 말을 해 발견하는 수가 많다. 아이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등 퇴행현상을 보이면 의심해 봐야한다.

흔히 딸의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되면 엄마들이 흥분해 이성을 잃기 쉽다. 부모가 서로 책임을 따지며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가장 좋지 않은 부모의 반응. 피해 아동은 부모를 통해 자신에게 몹쓸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교육 전문가 구성애씨의 경험담은 귀담아 들을 말이다. 구씨의 경우 어릴 적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안 엄마가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위로해 준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일생 동안 후유증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증거확보에 집착한 나머지 부모들이 도리어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는 점도 유의할 사항. 유도질문이나 암시적인 질문은 삼가야 한다. 다그치듯 물어보면 기가 질려 아이가 제대로 답하기 어렵다.

◆상담기관은 수호천사= 염증이나 충혈.찰과상 등은 쉽게 아물기 때문에 디지털카메라 등으로 기록을 남긴다. 병원 진료시에는 의사에게 증거확보를 위해 상처 부위를 촬영해 줄 것을 요청한다.

증거를 찾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아이를 끌고 다니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금물. 쉽게 흥분해 의사를 방어적으로 만들고 증거 확보 등에서 불리해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보다 객관적이고 침착하게 대처하기 위해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는 일은 필수적이다. 긴급전화 1366에 전화하면 상담기관과 연결해 준다. 외형적 상처가 아물었다고 해서 아이가 정상을 회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반드시 소아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편안한 장소에서 진술토록= 범인을 고소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깊이 생각해 결정한다. 일단 고소를 하게 되면 아이는 경찰.검찰.법원에 각 한번씩, 최소한 세번은 출두해야 한다. 변호사 등의 신문에서 두번 폭행당하는 경험을 할 우려가 있다. 경찰이나 법원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피해자 아동이 제대로 답변을 못하며 평생 무시무시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경찰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을 할 때 여자 경찰을 요구하거나 경찰서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하겠다고 요구할 수 있다. 수사 과정은 비디오로 촬영해 줄 것을 요청한다.

최근 법무부는 아동 성폭행 피해자의 경우 경찰 조사 1회만을 실시해 검찰과 법원의 증거로 채택하는 증거보전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으나 검찰 등의 반대로 논란을 빚고 있다. 피해자 아동이 법원에 출두했을 때도 보호자가 같이 있는 가운데 가해자와 얼굴을 맞대지 않고 편안하게 진술토록 해달라고 말할 수 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사진 설명 전문>
자녀가 성폭행당할 위험이 크다고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다. 특히 딸만 가진 부모는 물가에 아이 앉혀놓은 심정이다. 사진은 최근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자녀를 기다렸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들의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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