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노조에 밀린 조흥銀 파업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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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흥은행 불법 파업이 공권력 투입이나 물리적 충돌 없이 마무리된 것은 일단 다행스럽다. 그러나 정부가 불법파업에 개입, 노조 측의 무리한 요구를 대폭 수용하도록 한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은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노조가 밀면 밀린다'는 그릇된 노사관이 그대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몇몇 쟁점들을 적당히 얼버무려 불씨를 남긴 것도 문제다.

은행 매각 반대를 이유로 시작된 이번 파업은 고객과 금융시스템을 볼모로 한 불법 행위였다. 정부도 강경대응을 천명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면 형식이나 내용에서 모두 노조 측이 이겼다.

불법 파업에 정부가 협상 당사자로 나선 것부터 노조에 끌려간 잘못된 행위였다. 노조 측의 '분할매각'요구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었음에도 조흥은행 노조는 며칠간의 파업을 통해 고용 보장. 임금 대폭 인상 등 실리를 챙길 대로 챙겼다.

팔려가는 은행을 놓고 '최고경영자(CEO)는 ××은행 출신으로 한다''지주회사 내 임원 비율은 신한.조흥 출신 동수로 한다'는 등 경영문제까지 합의문에 명문화한 것은 국제기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최고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야 할 두 은행의 통합 여부를 '2년 후 조흥-신한은 양측 동수로 통추위를 구성해 논의'하기로 한 것도 새로운 논쟁거리를 남겼다.

"법과 원칙을 지켰다"고 자평한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인식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불법과 타협하고, 원칙 없이 양보를 하더라도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는 말인가. 이래서는 앞으로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다.

줄줄이 예정된 이익단체들의 집단행동들에는 아예 노동쟁의 대상이 안 되는 불법도 있고, 요구 역시 무리한 것들이 많다. 더 이상 조흥은행 파업과 같은 경우가 재연돼서는 안 된다.

잠시 어렵더라도 법과 원칙, 일관된 기준에 충실한 자세를 유지해야만 한국의 노사관계가 정상화되고 경제 회복도 가능하다는 점을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