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강아지·고양이 대신 우리술 키워보실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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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그만두고 웹툰으로 우리술 알리는 김효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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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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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알리미’. 김효실(34·여)씨가 올초 대기업을 그만두고 선택한 새 직업이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니 사실 백수에 가까운 상황이다.

 김씨는 원래 제일기획·SK플래닛 등 대기업에서 광고 기획을 했다. 10여 년 회사 생활을 하며 차장 직함을 달았고, 회사에서 실력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배우기 시작한 우리술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늘 불안함을 느끼잖아요. 그래서 무언가 배우려고들 하죠. 저 같은 30대 미혼 여성들은 더 그렇고요. 30대에 들어서면서 뭔가를 배우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나더군요. 저는 술을 배웠고요.”

 지난해 1월부터 주말을 이용해 방배동에 있는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우리술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금세 우리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술을 배우기 전까지 저에게 술은 취하기 위한 도구였어요. 그런데 술을 배울수록 귀하게 느껴져서 막 마시지 못하겠더라고요. 우리술은 만들 때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그 점에 매력을 느꼈어요.”

 1년간 기초과정 수업을 들은 김씨는 더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심화과정 수업이 주중에만 있어 직장과 병행할 수 없었다. 그는 직장 대신 우리술을 선택했고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 다닐 땐 늘 버틴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싫었어요. 그래 봤자 최대 5년 정도 버틸 수 있을까. 내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죠.”

 회사를 그만두니 시간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지난 7월부터 2주에 한 번씩 술을 배우는 두 명의 지인과 함께 ‘우리술톡’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 우리술을 소개하고 우리술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내용의 인터넷 방송이다. 9월부터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술은펫’이라는 웹툰을 올리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늘 장래 희망에 ‘만화가’를 적어냈었다. 미뤄뒀던 꿈을 우리술을 만나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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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툰 속 주인공은 김씨 자신이다. 집에서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 대신 술을 키우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우리술의 매력과 담그는 법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참신하다’ ‘나도 술 키워보고 싶다’는 댓글로 응원하고 있다. 가끔 지인들에게 직접 빚은 술을 선물하는데 “맛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우리에겐 가양주라는 문화가 있었어요. 집집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술을 빚었고 그래서 맛이 다 달랐죠. 그런 문화를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제 방식대로 만든 나만의 술도 만들고 싶어요.”

 편안한 현실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길을 가는 게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미래는 당연히 불안하죠. 그래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행복합니다.”

 만난 사람=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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