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말…미궁에 빠진 150억 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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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측이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건넸다고 진술한 양도성 예금증서(CD) 1백50억원의 추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대강의 윤곽은 잡히고 있지만 세탁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 있거나 행방이 묘연해 쉽사리 결론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朴씨 측은 이날에도 "결코 1백50억원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CD 제공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구속영장에 기록된 朴씨의 CD 수수 혐의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검팀은 20일 문제의 CD 1백50장(액면가 1억원)이 현금화된 과정에 전직 무기거래상 김영완(50)씨와 金씨의 부하직원인 임모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파악했다. 그러나 金씨와 임씨는 지난 3월과 2월 각각 미국으로 출국해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CD 중 1백40장은 일단 金씨에게 전달된 뒤 임씨를 거쳐 사채업자인 장모씨에게 들어갔다. 장씨는 이 중 1백억원어치를 조모.黃모씨 명의의 증권 계좌로 입금했으며, 그 해 5월과 7월 D보험사에 팔았다.

최종적으로는 7월과 10월에 만기가 돼 현금화됐다. 특검팀은 장씨 등을 조사했으나 이들은 모두 "金씨와 임씨를 통해 받았을 뿐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지는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가 수표로 바꿔 현금화한 40장의 CD와 金씨가 직접 다룬 10장에 대한 추적도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다.

특검팀은 수표 중 일부에 배서한 것으로 드러난 코리아텐더 사장 유신종씨를 불러 조사했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유씨 측은 "배서한 수표는 한 종금사장과의 거래 과정에서 받은 것이며 김영완씨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朴씨 측은 이날 金씨를 통해 정몽헌 회장에게 1백50억원을 요구한 적도, 이익치 전 회장을 통해 받은 일도 없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金씨와 李전회장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朴씨는 이날 李전회장과의 대질 조사에서 "내가 두 손으로 줬더니 (朴씨가) 왼손으로 받더라"는 李전회장의 말을 "나는 아랫사람이 건네는 물 한잔도 두 손으로 받는 사람"이라며 반박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일단 "CD 마련 및 전달 정황에 대한 관련자들의 진술이 상세하고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계좌추적을 통해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강주안.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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